728x90
반응형
SMALL
보탑이 의미하는 것 불성즉불계 생명의 장려함-존엄을 표현
국가의 존엄을 우선으로 하는 만행
전쟁과 혁명의 세기라고 불리는 20세기-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존엄보다도
국가의 존엄을 우선으로 하는 만행이 극한에 달해 개인보다도
집단력이 숭배되었던 시대였다.
그 결말은 브레진스키 박사가 말하는 메가데스(대량죽음)의
세기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비참한 역사를 끝까지 경험한 후 20세기 후반에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맹아(萌芽)가 보이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세계인류가 희구(希求)하는
생명존엄의 사조(思潮)를 여기서 법화경 보탑품(寶塔品)의
보탑을 통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대승불교의
정수인 법화경의 견보탑품제십일(見寶塔品第十一)에는
상상을 넘어서는 거대한 보탑이 대지로부터 용출하는 것이
설해져 있다.
그때에 불전에 칠보의 탑이 있었으니, 높이가 오백유순(由旬),
종광(縱廣)이 이백오십유순이니라.
대지로부터 용출하여 공중에 주재(住在)함.(개결 399쪽)
? 아부쓰보가 틀림없는 보탑 일유순(一由旬)은 당시의 제왕의
하루의 행군거리라고도 하고,
중국의 사십리에 해당된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보탑은
지구의 3분의1 내지 반정도의 크기가 되겠다.
그것도 칠보(七寶) 즉 금, 은, 유리, 차거, 마노, 진주, 매괴라는
보석으로 장식된, 눈이 부시도록 현란한 보탑이라고 설해져 있다.
일견 동화같은 이야기의 거대하고, 더없이 장려한 보탑인데
법화경에서는 이 보탑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고,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보탑에 대해서 사도(佐渡)에 살고있는 아부쓰보(阿佛房)가
日蓮(니치렌)대성인에게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라고
진지하게 질문했다. 구도심이 강한 아부쓰보에게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지금 아부쓰 상인(阿佛上人)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는 제목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가 바로 보탑이고 보탑이 바로 아부쓰보이며
이것 이외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어서 1304쪽)고.
아부쓰보의 일신을 구성하고있는 지수화풍공의 오대(五大)는
妙法蓮華經(묘호렌게쿄)의 오자(五字)이고,
그런 까닭에 아부쓰보는 본래 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 즉,
보탑의 당체(當體)이다.
다시 말하면 아부쓰보는 그대로 보탑이고 보탑은
그대로 아부쓰보인 것이다.
즉, 말법에 있어서는 법화경을 수지하고 제목을 봉창하는
자는 남녀, 귀천을 불문하고
그 몸이 그대로 보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평화의 세기 인간의 세기 리드하는 근본지표,
세계가 구하는 생명존엄의 사조 이 장려한 보탑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池田(이케다) SGI회장은 그것은 불성(佛性) 즉
불계의 생명이다. 보물로 만들고 장식돼 있는 모습은
불계의 생명의 장려함, 존귀함, 훌륭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생명의 존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정한 존엄이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존재이다.
이 일을 보탑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파악할
수가 있다고 스피치 하셨다.
그리고 SGI회장은 보탑이 사면에 전단(香木)의 향을 내어
향이 세계에 충만했다고 설해져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은 묘법에 사는 자가 내는 인덕 인격의 향기가 아니겠는가.
신심으로부터 나오는 뛰어난 인간성, 풍부한 정신성의 향기-
그것이 많은 사람을 흡인해 마지않는 매력으로 되는 것이다라고도
지도하셨다.
한사람의 인간의 흉중에 위대하고 존귀한 불성이 용출하는
모습은 소설 《신 인간혁명》 〈불타〉의 장에서도 볼 수가 있다.
심신을 괴롭히는 마와 장절(壯絶)한 싸움을 일으킨 불타는
생명력을 분기시키고 잡념을 털어버리면서
악마여, 겁많은 자는 네게 질지 모르나 용감한 자는 이긴다.
나는 싸운다. 만약 지고 살기보다는 이기고 죽는 편이 낫다고.
계속해서 깊이 사유(思惟)를 계속한 석존은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는 가슴에 전격(電擊)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몸은 감동에 떨리고, 뺨은 홍조(紅潮)되고 눈에는
눈물이 넘쳤다고. 이 큰 깨달음이 석존 한사람의 마음속에
감추어지는 게 아니고, 모든 민중에게 공통하는 생명의 법으로서
유포(流布)된 것에 불법의 위대성을 보는 듯한
마음이 든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존엄한 것이고 또 평등한 것이다.
이 일견 아주 당연한 것같이 생각되는 사상이 너무나도 쉽게
유린당한 것이 이 20세기가 아니었는지.
어떠한 인간에게도 저 같은 보탑으로 상징되는 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인간에게 상하의 차별 등이 존재할 리도 없다.
한데 대성인의 불법을 수지하고 있는 듯이 보여오던
닛켄종(日顯宗)의 공허한 권위의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가. 승(僧)은 신도(信徒)보다 위(上) 하루라도 먼저
출가(出家)한 쪽이 위(上) 귀하고 귀한 공양으로 유탕삼매(遊蕩三昧)-
스스로 성직자임을 자칭하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경시하고 속여온 죄는 무엇을 가지고도
속죄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실천에 의해 자타의 생명의 존엄에 눈뜬 보탑이
세계의 각처에서 용출하며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바로 성업(聖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평화의 세기, 인간의 시대를 리드해 가는
근본의 지표가 이 불법에 있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가고 싶다.
석존 한사람만이 아니고 만인이 자기 몸의 보탑을 세우고
보탑의 당체로서 찬연히 빛내어 간다.
그리고 이 빛나는 생명의 보탑이 이 지구상에 무수하게
나란히 서서 간다.
《방편품수량품강의》 6)고. 지용의 보살의 사명에
용약환희하며 매진해 갔으면 한다.
728x90
반응형
LIST
'알기쉬운 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용보살(地涌菩薩) (0) | 2024.06.12 |
---|---|
자행화타 (自行化他) (1) | 2024.06.12 |
오중상대(五重相對) (0) | 2024.06.12 |
‘일념(一念)’ (0) | 2024.06.12 |
일염부제(一閻浮提) (1)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