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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蓮대성인 시대의 제자들16

니치묘성인(日妙聖人) 니치묘성인(日妙聖人)  가마쿠라(鎌倉)로부터 어린 자식과 함께 日蓮대성인이 계신 사도(佐渡)로 또 미노부(身延)로 신심의 발걸음을 옮긴 것으로 유명한 오토고젠(乙御前)의 어머니인 니치묘(日妙女)에대해서는 이름 나이 태어난 곳 등은 전혀 알 수 없다. 알고 있는 것은 가마쿠라에 살고 있었던 여성 신자로서 이 때 이미 남편과 이별 혹은사별하고 있었다는 것, 자식이 아직 어렸었기 때문에 아마 20대 전반이고 또 그 유녀(幼女)가 오토고젠(御前이라는 것은 계급이 높은 부인의 이름에 붙이는 존칭)이라고불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별한 남편은 무사 계급이고, 어쩌면 무사 계급이라고 하면염불(念佛)이나 선종(禪宗)의 신자였기 때문에 신심을 하기 위하여 남편과 이혼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여겨진다. ◎ 대난(大難)속에서.. 2024. 9. 28.
比企能本(히키요시모토) 比企能本(히키요시모토)  히키다이가쿠사부로요시모토(比企大學三郞能本)는 가마쿠라시대 초기의 무장(武將) 히키요시카즈(比企能員)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요시카즈는 겐요리조(源賴朝)의 거병(擧兵) 이래 계속하여 전공을 세우고 딸 와카사노쓰보네(若狹局)가 2대 장군 요리이에(賴家)의 아들 이치반(一幡)을낳았기 때문에 외척으로서 권세를 떨치고 호죠씨와 대립했다​ 1203년 요리이에가 병이 들었을 때 이치반과 함께 요리이에의 동생 사네토모(實朝)에게 가독분할이 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사네토모의 외척인 호죠씨를 없애려고 했는데 거꾸로 모살(謀殺)되고 이 때 아들 무네카즈 이치반도 토벌되었던 것이다​ 히키가 몰락 후 학문을 뜻하여 쿄토에서 공부한 요시모토는 유관(儒官)으로서 막부에 종사하게 되어 가마쿠라로 옮겨 살았.. 2024. 9. 27.
호죠야겐타(北條彌源太) 호죠야겐타(北條彌源太)​호죠야겐타(北條彌源太)는 호죠씨의 일문으로 일찍부터 대성인께 귀의하고있었던듯 하지만 생몰년대 등 그 상세한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1268년,「입정안국론」의 예언이 적중하고 몽고국으로부터 국서가 가마쿠라에 도달했다 대성인은 막부와 불교계의 대표자 11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조속히 사종사의를 버리고 정법에 귀복하도록 간언하셨지만 이 11통어서 가운데 한 통이 호죠야겐타에게 보내지고 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특히 귀하는 사가미노가미(相模守殿)와 동성(同姓)이니근본이 멸하게 되면 지엽이 어찌 무성하겠느뇨빨리 몽고국을 조복하여 국토를 안온케 하시라』(어서 172)고 호죠일문에 이어지는 자로서 집권과 막부 요직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요청하시고 있다 그 후 호죠야겐타는 대성인의 사도유.. 2024. 9. 27.
마쓰노로쿠로사에몬뉴도(松野六郞左衛門入道) 마쓰노로쿠로사에몬뉴도(松野六郞左衛門入道)​마쓰노로쿠로사에몬뉴도(松野六郞左衛門入道)는 스루가쿠니(駿河國:시즈오카현)이하라군마쓰노(庵原郡松野)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입신에 이르는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명확하지 않다난죠(南條)가에 출가한 여인․우에노아마고젠(上野尼御前:난죠도키미쓰의 어머니)의 연(緣)에 의한 것이라고도, 혹은 日興상인이 수학하셨던 이와모도짓소지(岩本實相寺)와의 관계에 의한다고도, 또 짓소지의 학도 시타노고니치겐(下野公日源)의 교화에 의한다고도 말하여 진다 1276년 2월 17일에 받은 어서에『재가의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있는터에더욱이 아직 면식도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시고 신용하고 계시는지요이것은 오로지 과거의 숙식(宿植)일 것이로다내생에는 반드시 성불하시게 될 때가 .. 2024. 9. 27.
宿屋光則(야도야미쓰노리 宿屋光則(야도야미쓰노리)  야도야사에몬뉴도미쓰노리(宿屋左衛門入道光則)는 집권 호죠도키요리와 도키무네의 측근으로 종사했던 무사이다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는 1263년 도키요리의 임종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 최후의 간병을 위하여 출입을 허락받은 7명중에 야도야사에몬의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日蓮대성인은 1258년부터 2년반동안에 일체경의 검색을 거쳐 1260년에「입정안국론」을 완성, 전집권 사이묘지뉴도도키요리(最明寺入道時賴)에게진상했지만 이 때에 사사봉행(寺社奉行)으로서 중개의 역할을 한 것이 야도야사에몬뉴도였다 물론 이 당시는 야도야뉴도도 다른 막부의 요직자와 같이 고쿠라쿠지료칸에 귀의하고 율과 염불을 신수하고 있었던듯 하다​ 그 때 대성인은 야도야뉴도에 대하여『선종과 염불종을 버리시.. 2024. 9. 27.
名越尼(나고에의 부인) 名越尼(나고에의 부인)1253년, 세이쵸지(淸澄寺)에서의 입종선언후 가마쿠라로들어가셨던 대성인은 나고에의 마쓰바카야쓰에 초암을 지으셨다나고에의 땅은 막부 제2대 집권 호죠요시도키(北條義時)의차남 도모도키(朝時)가 저택을 지은 땅으로 그로부터 도모도키일족은 나고에의 일문이라고 칭하여 졌다​나고에 일문은 염불의 강신자(强信者)로 센코지(善光寺)죠라쿠지(長樂寺) 대불전(大佛殿) 등의 건립에 힘썼다고 전해진다이 도모도키의 부인이 나고에의 아마(尼), 혹은 오오아마(大尼)라고도 불려져 당시 대성인의 고향, 아와지방 도죠고(東條鄕)에 살고 있었다​나고에의 아마에 대해서 대성인은『日蓮의 부모 등에 은혜를 베푸신 사람』(어서 895)이라고도『日蓮에게 중은(重恩)의 사람』(어서 907)이라고도 말씀하셔서이 일로서부터 대.. 202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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