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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죠야겐타(北條彌源太)
호죠야겐타(北條彌源太)는 호죠씨의 일문으로 일찍부터 대성인께 귀의하고
있었던듯 하지만 생몰년대 등 그 상세한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268년,「입정안국론」의 예언이 적중하고
몽고국으로부터 국서가 가마쿠라에 도달했다
대성인은 막부와 불교계의 대표자 11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조속히
사종사의를 버리고 정법에 귀복하도록 간언하셨지만 이 11통어서
가운데 한 통이 호죠야겐타에게 보내지고 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특히 귀하는 사가미노가미(相模守殿)와 동성(同姓)이니
근본이 멸하게 되면 지엽이 어찌 무성하겠느뇨
빨리 몽고국을 조복하여 국토를 안온케 하시라』(어서 172)
고 호죠일문에 이어지는 자로서 집권과 막부 요직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요청하시고 있다
그 후 호죠야겐타는 대성인의 사도유죄 중에도
퇴전하는 일없이 신앙에 힘쓴듯
하고 1274년에는 기도의 예를 위하여 대성인께 큰칼
한 자루 작은칼한 자루를 공양드리고 있다
이 때의 답서에
『日蓮은 법화경의 행자인고로 삼종의 강적이 있어 종종의 대난을 당했노라
그런데 이러한 자의 제자 단나가 되신 일은 불가사의하도다
필시 곡절이 있으리니 명심하여 착실히 신심하여 영산정토에 가시라』
(어서 1226)
고 호죠야겐타가 대성인의 제자 단나로 된 것의 불사의함을 술하시고 있다
사실 그 대다수가 대성인께 대하여 원념을 품고 있었던 호죠일문 중에서
막부의 의향을 돌아보지 않고 대성인에게 귀의했을 뿐만아니라
다쓰노구치법난을 거치고 더욱 신앙을 관철했던 것은 정말
어려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또 기도를 위하여 장도와 함께 단도를 도합 두 자루 보내셨구려
이 장도는 이름있는 도공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 되노라 (중략)
당신이 가졌을 때는 악도(惡刀)․지금 불전(佛前)에 진상하였으므로
선도(善刀)가 되느니라』 (어서 1227) 고 이것이 오늘 날
다이세키지(大石寺)에 있는 무네치카(宗近)의 명도(名刀)라고 전하여 진다
1278년, 고쿠라구지료칸과 함께 대성인 박해의
장본인 겐쵸지도류가 죽었다
남송으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와서 호죠도키요리의 귀의를 받고
겐쵸지의 개산으로 되는 등 권세를 누렸던 도류였지만
그 만년은 문하의 참언에
의해서 두번이나 유죄에 처해져 사면되어 가마쿠라로
돌아오자마자 병으로 타계하였다
이것을 들으신 대성인은 호죠야겐타에게 편지를
보내어 도류의 악업을 술하신 후
『지나친 짓들인지라 광혹( 惑)이 나타나려고 하니
그대로 잠시 참고 보시라
뿌리가 노출하면 가지가 마르고 수원(水源)이
고갈하면 유수(流水)가 마른다는 말이 있도다』
(어서 어서 1230)
방법의 과보는 때를 지나 반드시 나타나고 그 지극한 과보는
후생에 받지 않으면 안된다 - 그 뜻을 잘 명심하고 금후로도
신심에 힘쓰가도록 지남하셨던 것이다
그 후의 호죠야겐타 소식은 알 수 없지만 입종
당초에 이미 대성인께 귀복하고 있고
미노부 입산후에 어서를 받고 있는 것에서 역시 생애에
걸쳐서 신앙을 관철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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