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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노로쿠로사에몬뉴도(松野六郞左衛門入道)
마쓰노로쿠로사에몬뉴도(松野六郞左衛門入道)는 스루가쿠니(駿河國:시즈오카현)
이하라군마쓰노(庵原郡松野)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입신에 이르는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명확하지 않다
난죠(南條)가에 출가한 여인․우에노아마고젠(上野尼御前:난죠도키미쓰의
어머니)의 연(緣)에 의한 것이라고도, 혹은 日興상인이 수학하셨던
이와모도짓소지(岩本實相寺)와의 관계에 의한다고도, 또 짓소지의
학도 시타노고니치겐(下野公日源)의
교화에 의한다고도 말하여 진다
1276년 2월 17일에 받은 어서에
『재가의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있는터에
더욱이 아직 면식도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시고 신용하고 계시는지요
이것은 오로지 과거의 숙식(宿植)일 것이로다
내생에는 반드시 성불하시게 될 때가 도래하여 불러 일으키는 마음일 것이니라』
(어서 1397)고 말씀하시고 있으므로 이 때에 이미
대성인께 귀의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대성인의 예언이 모두 적중하고 그러므로 사도유죄를
사면받았다고 말할 수 있고
이 시기에 있어서는 아직 일문에 대한 사람들의 원념은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스루가 일대에서는 日興상인의 과감한 절복홍교에 의해서 짓소지
․ 시쥬쿠인(四十九院)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 법난이 야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쓰노로쿠로사에몬이 그와 같은 상황 아래서 더구나 아직 대성인의 존용을
뵙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구도의 마음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희유한 모습이었다
◎ 마땅히 일어나서 멀리 맞이하여
입신 때에 이미 상당한 년령에 달하고 있었을 로쿠로사에몬은
스스로 대성인이 계신 곳으로 참예는 할 수 없었으나
사람을 통하여 여러 번 공양을 드리고 혹은 편지로
법문을 묻는 등 신행에 힘쓰고 있다
『이 경을 수지한 후에 퇴전없이 십여시 자아게를 봉독하고 제목을 봉창하고
있나이다 단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어느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어서 1381)
1276년 12월, 마쓰노로쿠로사에몬은 성인이 부르는 제목도 범부가 부르는 제목도
본래 그 차이는 없다고 하신 후 다만 법화경의 마음에 위배해서 부르는 제목에는
공덕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술하셔서 14비방을 밝히고 있다
또 로쿠로사에몬으로부터 보면 이 때 편지를 가지고 온
산미보를 포함한 대성인의 제자는 비교적 젊은 승려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므로하여 승려를 가벼이하는 마음이 생길 가능성을 아셨던 것일까
『그런데 악세의 중생은 아만 편집 명문 명리에 집착하여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에게 사물을 배우면 남들에게 천하게 여겨지지나 않을까 하고
부단히 악념에 주하여 악도에 떨어진다고 쓰여 있느니라』
(어서 1382)고 주도면밀한 배려로서 이것을 훈계하시고 있다
그리고 신분이나 년령에 구애되지 않고 신행학에 있어서 한 걸음이라도 앞선
사람에 대해서 신경(信敬)의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을 지남하셨던 것이다
『아무리 천한 자라도 조금 나보다 뛰어나서 지혜있는 사람에게는
이 경의 내력을 물으시라 (중략) 무지한 자는 이 경을 설하는
자를 섬김으로써 공덕을 받을지니라
어떠한 귀축일지라도 법화경의 일구 일게를 설하는 자는「마땅히 일어나
멀리 마중하여 응당 부처를 공경하듯이 하라」는 도리이므로
부처와 같이 서로 존경할지어다 (중략)
이 산미보는 하열한 자이지만 조금이나마 법화경의 법문을 말하는 자이므로
부처와 같이 존경하여 법문을 물을지어다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이것을 생각할 지어다』(어서 1382)
더욱이 대성인은 후생에 있어서 성불 경애의 훌륭함을 설하고 이 어서를 맺고 있다
그 후 1277년 9월 5일, 다시 대성인은 임종 후의 성불의 경애에 대해서 써 보내셨다
이것은 마쓰노로쿠로사에몬 자신의 후생에의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로쿠로사에몬은 인생의 총결산이라고도 하여야 할 임종의 일을 생각해서 하루
하루의 일순 일순을 오로지 후생의 대사를 마음에 두고 살아갔을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도 금생의 괴로움조차 슬프니 하물며 내세의 고(苦)에랴
하고 생각해서라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기쁠 때도 금생의 기쁨은 꿈속의 꿈이며 영산정토의 기쁨이야말로
진실한 기쁨이라고 생각하시어 또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퇴전없이 수행하여 최후 임종의 때를 기다려 보시라
묘각의 산에 달려 올라가 사방을 쫙 바라보니 아아, 유쾌하도다 법계는 적광토로서
유리를 가지고 땅으로 하고 금의 밧줄로써 팔(八)의 길에 경계를 했노라
천으로부터 사종의 꽃이 내리고 허공에서 음악이 들리며 제불보살은
상락아정의 바람에 산들거리고 오락 쾌락하심이니라
우리들도 그 수에 들어가서 유희하고 즐기게 될 것은 벌써 다가왔도다
신심이 약해서는 이와같이 가장 좋은 곳에는 갈 수 없도다 갈 수 없노라』
(어서 1386)
이리하여 성불을 원하여 마쓰노로쿠로사에몬은 1278년 11월 5일 임종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남은 고케아마고젠(後家尼御前)과 자식인
마쓰노의 로쿠로사에몬등은
그 추선공양을 위하여도 보다 더한층 신앙에 힘쓰고 있다
이렇게 하여 마쓰노가의 일족 중에서 후의 육로승(六老僧)의 한 사람인
렌게아시리니치지(蓮華아사리日持)가 나오고 또한 손자에 난죠도키미쓰,
증손자에 日目상인, 현손자에 日道상인의 양 법주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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