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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불법세미나

죽림의 칠현

by 행복철학자 2024.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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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의 칠현

 

〈신니부인답서(新尼夫人答書)〉에 죽림(竹林)의 칠현(七賢)이

자취를 감춰 버린 산도 이러했으리라(어서 904쪽)라고 있다.

이것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당시 미노부(身延)의 땅의 모습을

설명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죽림의 칠현이란 완적(阮籍),

혜강(瑞康), 산도(山濤), 완함(阮咸), 유령(劉伶), 향수(向秀),

왕융(王戎)의 일곱 사람을 말한다.

당시 중국에는 위(魏), 촉(蜀), 오(吳)의 세나라가 패(覇)를 다투고,

세상은 매우 어지러웠다. 특히 위(魏)에서 진(晋)시대에 걸쳐서는

유교도덕(儒敎道德)의 형식적인 예의작법(禮儀作法)이

거리낌없이 통하고 그것과 유착된 권력(權力)이 추악한 싸움을

벌이는 난리로 매일을 보냈다.

그들은 이러한 형식적인 도덕을 싫어해서 권력에 등을 돌리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 속세의 번거러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산림(山林)에 숨어 지냈던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술을

마음대로 마시며 노자(老子)나 장자(莊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동경(憧憬)하고, 허무(虛無)의 의론(議論)

즉 청담(淸談)'에 몰두했다.

이 같은 행동은 당시의 허위(虛僞)에 가득하고 형해화(形骸化)된

유교적 사회에 대해 못 견디겠다는 저항의 의사표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에 이 칠현의 사상(思想), 행동은 공경(公卿)의 청년들에게

까지 영향을 주어 사회의 풍기(風紀)는 크게  흐트러지게 되었다.

대성인은〈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에서 정치의 혼란이

완적(阮籍)이라는 일재(逸才)를 예의(禮儀)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내몰아 그 후의 유위(有爲)한 청년들도 이것을 본뜬 결과 서진(西晋),

사마씨(司馬氏)가 멸망하는 상(相)으로 되었다는 의미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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