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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불법세미나

자신 속에 보탑의 주처

by 행복철학자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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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속에 보탑의 주처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主處)이니라.
                                 (어서 1304쪽)

               통해

자신의 몸은 또한 삼신즉일의 본각의 부처다.
이렇게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도록 하시라.
그곳이 바로 보탑의 주소다.


이 글월에서는 가장 먼저 창제(唱題)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단지 막연하게 창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믿고" 

제목을 부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결코 불계(佛界)를 용현하지 못할리가 없다는 확신에

찬 창제와 기원이 중요하다.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해진다.'
'불행을 바꿔내고 어본존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꼭 그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  내게 용기와

불지혜를 주세요' 라고 확신있는 기원을 하고
창제에 정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대단히 큰 차이가 난다.

반드시 이렇게 된다.   이렇게 하겠다는 일념(一念)을

담은 창제가 중요하다.

그 다음 "이곳이 바로 보탑의 주처이니라"에는

불계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제목을 부르고 진지하게 생활에 임하는 바로

그 장소에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현재의 시점을 떠나

어딘가 별다른 장소에서 행복의 실체를 구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 자체는 변하지 않으면서 달리

이상향과 행복을 찾는 것은
공허한 시도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지금의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면 변혁할 수 있는가를 설한 것이 불법이다.
어딘가에 꿈속의 행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힘차게 발을 내디뎌
희망찬 변혁에 도전하는 것이 불법이다.

보탑은, 일단 묘법의 불에 생명이 불타 오르면

혁혁히 빛나기 시작하고
고뇌도 미혹도, 어둠도 탁함도 반드시 떨쳐버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때야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환희가 전신을 감쌀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그곳에 절대적인 행복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 묘법의 힘이고 신심(信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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