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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1-1 절대적 행복’을 위한 신심

by 행복철학자 2024.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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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절대적 행복’을 위한 신심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불법은 바로 이 근본 문제에

명쾌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스스로 묘법(妙法)을 깨닫고

전 세계 민중의 행복을 위해

어본존님을 도현하셨습니다.

이 절(節)에서는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행복은 때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상대적 행복’이 아니라 최고의 환희와 지혜

그리고 자비에 가득찬 흔들림 없는

‘절대적 행복’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그리고 불법에서 설하는 삼세(三世)의

생명관을 바탕으로 어본존을 믿고

꿋꿋이 기원하여 한 없는 생명력을 솟아나게

하면 현세에서 과거세의

숙업을 전환하고, 현세에서 내세로 ‘절대적

행복’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타이총회 스피치에서 1994년 2월 6일, 타이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의 근본 문제입니다.

이미 태어난 이상 이 과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연구한 것이 많은

철학이고 사상이며 종교입니다.

 

또 정치나 경제 그리고 과학 등도 그 근본은

이 과제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전부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무엇이 최고의 인생인가’에 답하지 못합니다.

명확한 결론이 없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도리에 맞는

답이 없습니다.

이것에 명쾌하게 답한 것이 불교입니다.

석존이고 천태대사이며 니치렌대성인입니다.

석존의 결론과 대성인의 결론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게다가 니치렌대성인은

그 결론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구체적인 ‘기계’를 남겨주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이 ‘행복제조기’라고 비유하신

어본존을, 전 세계 민중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행복인가.

타이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 행복은 사람을 우쭐대게 만들며 추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진실한 행복은 사람을

환희 차게 하고,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차게 한다.”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상대적 행복’과 대조해

‘절대적 행복’을 설하셨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어떻다든가, 또 때와 더불어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환상 같은 행복이 아닙니다.

어떠한 때에도 ‘살아 있는 자체가 즐겁다’는

경애를 연다, 그러기 위한

신심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실한 행복은 사람을 환희

차게 하고,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차게 한다.”

고 있듯이 최고의 환희와

지혜와 자비가 솟아나옵니다.

어서에는 “자타(自他) 공()히 지혜와

자비가 있음을 희()라고 한다.”

(어서 761쪽) 즉

“자타 함께 ‘지혜’와 ‘자비’가 있는 것을

‘희’(환희)라고 한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자신도 ‘절대적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신심이며 광포의 조직입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습니다.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습니다. 싫은 일도 날마다

일어납니다. 부부 싸움을 하기도 하고

이혼해서 불행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아도 자식이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온갖 괴로움이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신앙은 그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기’

위한 엔진입니다.

로켓처럼 번뇌의 괴로움을 뚫고 생기

발랄하게 쭉쭉 상승한다, 생기발랄하게

한없이 향상한다, 행복의 하늘을 유희

(遊戱)한다, 그것을 위한 분사력(噴射力)

이 신심입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면

‘꿋꿋이 사는 힘’이 솟아납니다.

‘희망’이 솟아납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이기에 번뇌를

기쁨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불안을

희망으로, 걱정을 안심으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모두 바꾸면서 꿋꿋이 살 수 있습니다.

절대 막힘이 없습니다.

대성인은 “묘()란 소생(蘇生)의 의()이고,

소생이라 함은 되살아난다는 의이니라.

”(어서 947쪽) 즉 “묘는 소생의 의미이다.

소생은 되살아 난다는 의미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에게도, 단체에도, 사회와 국가에도

모든 것에 ‘삶의 활력’을 주고

싱싱하게 소생시킨다,

그것이 묘법의 위대한 힘입니다.

인간에게는 숙명도 있습니다.

“나는 좀더 부잣집에 태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좀더 미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 물론 타이의 여성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숙명적인 과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삼세(三世)의

생명관으로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엄연히 전세(前世)가 있고 인과(因果)가 있습니다.

전세에는 지구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천문학에서도 수많은 별은 존재하는

우주에는 인간과 같은 지적(知的)생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실제로 이곳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신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숙명을

전환하고 멋진 ‘최고의 인생’을 만들까.

결론지어 말하면 신심을 해야 비로소 모든

숙명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그곳을 그대로 행복의

적광토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은 ‘현당이세(現當二世)’를

가르치기 때문에 늘 ‘현재에서 미래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렇게 계속 인생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내세도 또 그 다음도 내세도

무한하게 열어갈 수 있습니다.

무량한 ‘보물’을 내 몸에서 열고, 내 몸에

그 ‘보물’을 가득 채워 빛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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