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품 강의 17
【본 문】
기제자중 불실심자 견차양약 색향구호 즉편복지 병진제유 여실심자
其諸子中 不失心者 見此養藥 色香俱好 卽便服之 病盡除愈 余失心者
견기부래 수역환희 문신구색치병 연여기약 이불긍복 소이자하
見其父來 雖亦歡喜 問신求索治病 然與其藥 而不肯服 所以者何
독기심입 실본심고 어차호 색향약 이위불미
毒氣深入 失本心故 於此好 色香藥 而謂不美
그 모든 자식 중에서 마음을 잃지 않은 자는 이 양약의 색향 모두 좋은 것을 보고,
곧 이것을 마셨더니 병이 전부 나았다. 마음을 잃은 자는 그 아버지가 오신 것
을 보고 또 환희하여 문안 인사를 드리고 병을 고칠 것을 원하지만, 그 약을 주어
도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독기가 깊이 들어가서 본심을 잃어버린 고로 이 좋은 색향이 있는 약을 보고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 의】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또 서로 사이좋게 지내려고 누구나 생각한다.
'불행해지고 싶다.' '다른 사람과 서로 미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때로 사소한 일에 구애되어 판단을 그르치고, 불
행의 언덕을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다. 별것 아닌 일에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
키는 일도 있다.
니찌렌(日蓮)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물고기는 목숨을 아끼기 때문에
연못이 얕은 것을 한탄하고, 연못의 바닥에 구멍을 파서 살지만 미끼에 속아서
낚시 바늘을 삼킨다. 새는 나무가 얕은 것을 겁내어 위쪽의 가지에 살지만 먹이에
속아서 그물에 걸린다. (어서 956쪽, 취의) - 라고.
모두 필사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데, 중요한 때에 행복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러한 일을 올바르게 판단 할 수 없는 '전도(顚倒)된 생명' '우치한
마음'에 비유한 경문입니다. 이 '전도(顚倒)된 생명'을 지혜의 광명(光明)으로써
올바른 방향, 행복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부처이다.
가치관의 顚倒(전도)를 바로 잡는 불법의 영지
이번에는 '양의병자(良醫病子)의 비유'에서 이것을 배우고자 한다.
독약을 마셔버린 자식들 가운데는 본심을 아직 잃지 않은 자식들도 있었다. 그들
은 아버지가 조제한 약이 색도 향기도 훌륭한 것을 보고 곧 이것을 먹는다. 병은
전부 치유되었다.
대성인은 본심이란 "법화경을 믿는 마음"(어서 1081쪽)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불성(佛性)의 본심" (同쪽)이라고도 말씀하셨다. 본심이란 바로 불성을 말한다.
미혹한 범부라도 법화경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흉중에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에는 계속해서 이 본심을 잃은 자식들에 대해 설해져 있다.
본심을 잃은 자식들도 아버지가 돌아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고쳐 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간심(肝心)인 약을 주어도 좀처럼 먹지 않는다. 독이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려서 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독이 깊이 들어가 본심을 잃는다고 하는 것은
깊은 미혹 때문에 불성(佛性)의 힘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복을 추구하면
서도 더구나 행복의 원인이 눈 앞에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좋은 색향이 있는 약을 양약이라고 하지 않고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묘
법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려고 한다. 그야말로 선(善)과 악(惡), 정(正)과
사(邪)를 혼동하는 '전도된 중생'다.
어의구전에는 "독기심입이란 권교방법(權敎謗法)의 執情(집정)이 깊이 들어간 자이
다. 이 때문에 법화경의 대양약을 신수(信受)할 수가 없다"(어서 755쪽, 취의)라고
말씀하셨다.
권교방법의 집정이란 저급한 가르침에 집착하여 월등한 가르침을 열등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전도된 판단 자세를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향상의 마음을 잊고 저급한 삶의 자세에 집착하며 반대로
높은 뜻을 가지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태도에도 통할 것이다.
도다(戶田)선생님은 비여양의(譬如良醫)의 경문에 대해 "이러한 경문을 일단 줄줄
읽어보면, 석존 시대의 일을 말하는 것같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말법인 오늘날을
가리키는 예언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야말로 이 경문은 오늘날 일본 한국 사회의 전도된 모습을 비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료를 바라지만 결국 약을 거절하고 먹지 않는다. 다시 말해 누구나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마음속으로는 원한다. 그러나 일편단심, 용기, 善惡(선악), 지성 등 인
간 정신의 선한 힘이 쇠약해져 버렸다.
그것은 사회에 확고한 철학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관이 정해지지 않
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무사(無私)와 사욕(私慾), 숭고한 것과 비천한 것을 전
도(顚倒)시켜 버린다.
불법에서는 향락적인 현실이 영원히 계속 된다고 착각하는 것을 사전도(四顚倒)라
고 한다. 즉 향락을 추구하는 차원의 상,락,아,정이다. 찰나의 쾌락, 돈이나 세간
적인 명성 등이 '영원히 계속된다' '즐겁다' '자기답다' '훌륭하다'고 믿어버리는 삶
이다.
우리들은 常樂我淨(상락아정)의 大道(대도)를 상쾌하게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해서 석존은 처음으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 -- 空을 설하여 향락에 대한 집착을 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방편의 가르에 따라 그런 사람의 경애를 높인 후 법화경에 와서 최종적으로
진정한 무너지지 않는 상,락,아,정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같은 낙(樂)"이라 해도 지금만 즐거우면 좋다는 사전도(四顚倒)의 낙으
로서는 생명의 빛남,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광포의 활동으로 얻는 낙에는
참다운 유쾌함, 생명 깊은 곳에서 솟는 기쁨이 있다.
차원이 전혀다르다.
저 사람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 사람은 건강할까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차례
로 벗을 격려하기 위해 다닌다. 일면에서는 확실히 어렵다. 그러나 대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고뇌에 싸여 있던 벗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온다. '벗이 숙명의 험한 파도를
극복하고 소생해 간다.' 이 때의 기쁨, 반응에는 어떠한 드라마도 퇴색해 버릴 정도
로 인생의 제호미가 있다. 이것이 진정한 상,락,아,정의 삶이다. 긍지를 갖고 상락아
정의 인생을 만끽하자.
발랄한 생명의 빛남, 올바른 가치관, 생명존중의 사상, 보살의 행동을 주위에 의연
하게 넓혀간다. 거기에야말로 전도된 사회를 전환시켜 가는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