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품 강의 16
【본 문】
부견자등 고뇌여시 의제경방 구호약초 색향미미 개실구족
父見子等 苦惱如是 依諸經方 求好藥草 色香美味 皆悉具足
도사화합 여자령복 이작시언 차대양약 색향미미 개실구족
禱徙和合 與子令服 而作是言 此大養藥 色香美味 皆悉具足
여등가복 속제고뇌 무부중환.
汝等可服 速除苦惱 無復衆患.
아버지는 자식들의 고뇌가 이와 같은 것을 보고 여러가지 經方(경방)에 의하여
색향미미가 모두 빠짐없이 구족된 약초를 구해서, 도사화합하여 자식들에게 주
면서 마시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와같이 말했다. 이 대양약은 색향미미가 모두 빠짐없이 구족되었으니
너희들은 마실지어다. 그러면 속히 고뇌를 제하고 또한 모든 우환이 없어질 것이
니라고.
【강 의】
아버지인 양의가 독약을 마시고 고뇌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고, 약을 조제해 주
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자식들이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고뇌를 제거
하려 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괴로울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지금 아버지가 약을 마시게 해 줄테니까"라
고, 약초를 돌절구로 가는 작업도 애가 타서 서둘러 약을 만드는 아버지의 필사적
인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같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의 고뇌를 자기의 고뇌라고 받아들이고, 함께 고뇌
하는 것이 부처이다.
진정한 동고(同苦)는 발고(拔苦)이고 여락(與樂)이다. 단순하게 동정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고뇌하고, 구체적으로 그 고뇌를 제거하여(발고), 진정한 평온과 행복을
주기(여락)까지 싸우는 것이 부처입니다.
법화경에는 "나(석존)는 중생의 아버지이다. 그들의 고난을 제거하고, 무량무변
한 부처의 지혜라는 약을 주는 것이다." (開結 216쪽 趣意(취의)라고 있다.
중생을 생각하는 대성인의 嚴父의 사랑
석존의 자비는 중생의 고뇌에 무조건 동고(同苦)하는 비모(悲母)와 같은 사랑임
과 동시에, 그 고뇌를 제거하고, 진정한 안락을 주기까지 철저하게 싸우는 자부
(慈父)의 엄애(嚴愛)이기도 하다.
그 부처의 엄부(嚴父)의 사랑이 설해져 있는 것이 법화경이다. 이전경(爾前經)
에는 비모(悲母)의 사랑의 면(面)이 조금 설해져 있는 데에 불과하다. 전교(傳敎)
도 "이전경은 약간의 불모(佛母)의 의(義)는 있지만, 단지 사랑만이 있고 엄애의
의가 결연되어 있다." 고 말했습니다. "비모의 사랑"만으로는 근본적인 고뇌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
엄부(嚴父) 비모(悲母) 양면의 덕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부처는 모든 중생을 구
제할 수가 있다. 특히 말법(末法)은 석존의 시대와 비교해서 훨씬 탁악(濁惡)의
세상이고, 사람들의 탐(貪: 탐욕). 진(瞋: 노여움). 치(癡:어리석음)의 삼독(三毒)
도 강해지는 시대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고(苦)를 없애(拔:발)"는 일이 난사(難事)이다를 계속하신 것
이다.
도다(戶田)선생님은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가르침은 엄부의 사랑
입니다. 상벌(賞罰)이 엄연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질타할것은
질타하고 사랑할 것은 사랑하며, 또 철저하게 구제해 줍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
랑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엄부 비모란 부처의 덕성(德性)을 나타내는 비유이고 가
정에 있어서의 부모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논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우리 집은
어머니 쪽이 아주 강하다고 하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비유속에서 아버지는 좋은 것만 골라낸 약초를 조제하여, 색도 향도 맛도 뛰어
난 대양약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이것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자비로
말하면 발고 임과 동시에 여락에 해당된다.
색향미미란 三大秘法의 어본존
석존이 사람들에게 준 색향미미, 모두 다 구족한 그런 법이란 법화경의 지혜이
다. 고(苦)를 빼는 것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재산을 물려 주듯이, 부
처의 지혜라고 하는 행복의 종자를 중생에게 주는 것이다.
그 구극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다. 대성인은 말법의 전인류를 위해
색도 향도 맛도 구족한 좋은 법으로서,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
를 남기셨다.
색도 향도 맛도 갖추고 있으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약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천태는 이 색향미미를 불교실천의 기본이 되는 계정혜(戒定慧)에 적용시켜 색이
계, 향이 정, 미가 혜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대성인은 불법에서 말하면 색이
본문의 계단, 향이 본문의 본존, 미가 본문의 제목에 해당된다.
도사화합이란 약초를 갈아 으깨어 그 성분을 조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순수한
엣센스를 추출하는 것이다.
석존은 모든 설법의 결론을 법화경에 집약했다. 대성인은 모든 부처의 인행(因
行:수행)과 과덕(果德:부처의 공덕)을 도사화합하여 삼대비법을 나타내셨다.
대성인은 스스로 개실구족에 대해 "개실(皆悉)의 이자(二字)는 만행만선(萬行
萬善). 제파라밀(諸波羅蜜)을 구족한 대양약인 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서
755쪽)라고 말씀하셨다.
또 "일념삼천을 모르는 자에게는 부처가 대자비를 일으켜, 오자내(五字內)에 이
주(珠)를 싸서 말대유치(末代幼稚)한자의 목에 걸게 하시도다" (同 254쪽)라고
도 말씀하셨다.
약은 먹어야만 그 효용을 발휘한다. 천태가 세운 이(理)의 일념삼천은 비유한다
면, 말법의 중생을 위해 만든 약은 아니다. 말법(末法)의 중생은 그대로는 먹을
수 없다. 어떻게 단순하게 명쾌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누구라도 먹을 수(실천할
수)있도록 할까. 이것이 양의(良醫)로서 부처가 할 일이다.
그런데 아들에게 약초를 먹게할 때, 아버지는 말한다. "이 대양약(大良藥)은
색도 향도 맛도 훌륭하다. 모두 마셔라. 즉시 고통이 없어지고 또 몸이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고
문저에서 보면 어본존의공덕을 나타내시고 있는 일절이다. 어본존은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 대양약이다. 기원으로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죄로서
소멸되지 않음이 없으며 복으로서 오지 않음이 없고, 이(理)로서 나타나지 않음
이 없다." 라는 대공덕이 갖추어져 있다.
모두, 다 구족한 것이다. 수지한 사람은 신속하게 고뇌가 제거될 뿐만 아니라,
병이 없는 행복경애가 현출하는 것이다.
도다(戶田)선생님은 아버지의 이 말은 부처의 약속이라고 강의 하셨다. 즉 문저
로 읽으면 이 경문은 니찌렌(日蓮)대성인이 말법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누구라도
반드시 행복하게 된다고 선언하시고 있는 일절이다.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움의 맛(味)을 모른다.
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제목의 오자에 일법(一法)도 구족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없으니 만약 복용하는 자는 속제고뇌(速除苦惱)이니라" (同 755쪽)라고 말씀
하셨다.
어떤 사람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특히 가장 괴로와하고 있는 사람은 가장 행
복해질 권리를 갖고 있다. 가장 고생한 사람은 남 보다 더한층 경애(境涯)를 열 수
가 있다. 그것이 신심의 묘(妙)이다. 그리고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걷
는 것이 불법자(佛法者)이다.
어느 시대에도 사회의 왜곡된 영향을 받고 가장 괴로와하는 것은 서민이다. 어리
석은 지도자에게 이끌리는 민중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위대한 사람은 반드시 '민
중이야말로 보배라는 시점을 잊지 않는다. 빅톨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저술했을 때
서문의 첫페이지에 스스로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 한 본서(本書)와 같은 책
도 아마 무익하지는 않으리라"고 쓴 것은 유명하다.
"이 세상에서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 싶다" -- 그것은 도다선생님의 외침이
었다.
도다선생님은 서민과 함께 걸으신 불세출(不世出)의 민중 지도자이다.
수량품의 이 경문을 강의할 때도 도다선생님은 그 독특한 유머가 섞인 어조로 말
하셨다.
"이 사바세계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들이 놀러 온 곳입니다. 즐기기 위해서는
괴로움이라는 것이 조금 있어야만 즐거움의 맛이 나오는 법입니다. 그런데 놀기
는 커녕 오히려 괴로움뿐입니다."라고.
수강자는 이 대양약만 있으면 황파(荒波)를 극복하고 유유한 경애를 확립할 수 있
다는 것을 배웠다. 혼의 지도자의 이렇게 활달한 이야기가 전쟁 후 혼란기에 얼마
만큼 불안의 암운을 날려버리고 마음에 양광(陽光)을 비추어 왔던가.
이것이 진정한 지도자이다. 고뇌하는 사람. 지쳐있는 사람이있으면 아무리 피로
해도 전혼을 기울여 격려하셨다.
싸우는 사람, 병든 사람을 대생명력으로 감싸가는 것이 학회이다.
여러분도 그 정신으로 행동해 오셨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한다.' '자기 일은 제쳐 놓고라도 격려하지 않
고서는 견딜 수 없다.' "이렇게 행복해졌습니다."라는 기쁨의 보고를 들으면 어떠한
피로도 모두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창가학회이다.
서민의 마음이 구축한 행복의 대성(大城)이다. 이 존귀한 지용의 연대는 누구도 파
괴할 수 없다.
묘법의 대양약을 인류는 갈앙
"권력자는 불탑이나 사원을 파괴할 수는 있어도 불법을 파괴할 수는 없다"고 대성
인은 통찰하셨다. (어서 182쪽, 337쪽등, 취의) 마음을 외부에서 부수는 것은 불가
능하다. 아름다운 마음의 스크럼이 있는 한 묘법의 세계는 절대로 불멸이다.
毒(독)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아이들과 같이 지금은 三毒(삼독)이 더욱더 강한
시대로 되어 버렸다. 현대의 막힘은 '마음의 변혁'을 인류가 잊어 버렸다는 데에 있
다. 그것이 20세기의 교훈이다.
모든 분야에서 '마음의 독'을 제거하는 철학이 요구되고 있다. '묘법의 대양약'을
전인류가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대성인은 묘법을 실천하는 대성인의 一門이야말로 "대양약의 본주(本珠)(어서 755
쪽)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들의 발고여락의 자비행이야말로 21세기의 '마음의
부흥' '인간복권'의 위대한 선구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