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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4-9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by 행복철학자 202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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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니치롄대성인은 문하인 묘이치니에게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이 절에서는 인생의

‘겨울’은 멋진 ‘봄’에 이르기 위한

단련의 때이며 올바른 법을 바탕으로 한

인생은 자신의 생명이 우주 근원의

리듬에 합치하여 삼세에 빛나는 승리의 ‘봄’을

반드시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어서 1253쪽) 즉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지만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얼마나 많은 벗이 이 말에 의지하며 소생의 봄

, 인생의 봄으로 가는 길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지침입니다.

 

또 진실한 행복을 바라는 몇억, 몇십억의

세계 민중도 앞으로 이 금언(金言)에서

틀림없이 한없는 희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금언에 담긴 어본불(御本佛)의

대자비의 일단을 보고자 합니다.

이 어서는 남편을 여읜 문하 묘이치니에게

보낸 격려입니다. 묘이치니의 남편은

신앙이 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성인이

다쓰노구치법난을 당하신 뒤에 법화경을

신앙한다는 이유로 소령을 몰수당한 듯합니다.

 

올바르기 때문에 박해를 당합니다.

이것이 악한 인간사회의 법칙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라도 이 실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묘이치니의 남편은 대성인이 사도유죄 중일

때 신념을 관철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에 남겨진 것은 늙은 묘이치니와

자녀들 뿐, 그중에는 병약한 아이와

여자 아이도 있었습니다. 묘이치니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대성인은 그러한 상황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 “돋아가신 남편은 얼마나

그대 가족을 걱정하실까요.” 하고 깊이

마음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나(니치렌)도 필시 걱정하셨겠지요.”

하고 헤아리셨습니다.

극심한 추위가 몰아치는 사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사도에 스승은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대난이

한창일 때 ‘자신은 죽어간다. 참으로 원통하다.’

이러한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대성인은 고난 속에서 죽어간 용감한 문하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승려(僧侶)는 앞으로 어떠한 사연이

있어서 훌륭하게 되시리라고 생각하셨을

터인데 어이없게도 유배당하여 떠났으므로

어찌하여 어찌하여 법화경과

십나찰(十羅刹)은 하고 생각하셨으리라.

 

지금까지만이라도 생존해 계셨다면

니치렌이 용서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

것인가.”(어서 1253쪽)

즉 “남편 분은 ‘법화경이 넓혀짐에 따라

이 승려(대성인)는 여러 가지 훌륭한 점이 있어

틀림없이 훌륭하다고 존경받을 것이다.’

하고 기대하셨겠지요.

그러나 (대성인은) 허무하게도 사도에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법화경과 제천선신(諸天善神)인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는

어찌 되었는가.’ 하고 생각했겠지요.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니치렌이

사도에서 사면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다른 어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면에서

많은 문하가 대성인이 혁혁한

영예를 누리게 되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잇따른

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온 일본에서

욕설과 비웃음 그리고 압박이 숨 쉴

새도 없이 덮쳐왔습니다. 자신도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자

퇴전하고 반역하는 자도 나왔습니다. 그들은

권력자의 앞잡이가 되어 지난날의

스승과 동지를 괴롭히려고 암약(暗躍)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묘이치니의 남편은 마지막까지

성실하고 충실하게 신념을 관철했습니다.

그런 만큼 얼마나 대성인이 개선(凱旋)하는

모습을 꿈꾸었을까요. 또 배신자들의

비열함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요.

대성인은 그러한 문하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셨습니다. 전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악과 타협하지 않고 굳이

대난 속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묘이치니의 죽은 남편이 대성인이

사도에서 귀환하셨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기뻐하고

반가워했을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따라온 문하에게 ‘승리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누구보다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대성인의 마음이 강하게 전해집니다.

게다가 대성인은 묘이치니에게 “전부터

말했듯이 몽고내습이 실제로

일어난 세상을 본다면

(남편 분은 ‘보라, 나의 스승이 예언한 대로

되지 않았는가.’ 하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나라를 생각하면 내습은 슬퍼해야 할 일이지만)

범부이기 때문에”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묘이치니에게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전부

우리는 일체입니다.”라는 어본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지 않았을까요.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는 말씀에는

요약하면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남편 분은 ‘겨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봄’이 왔습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됩니다.

당신도 꿋꿋이 사세요. 신념을 관철한

사람은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 행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남편 분도 반드시

당신의 가족을 지킬 것입니다.”

더욱이 대성인은 “유사시가 되면 어린

자녀들도 내가 보살피겠습니다.” 하고 깊은

자애를 보내주셨습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대성인불법(大聖人佛法)은 이런

한없는 다정함과 따뜻한 인간성에 맥동합니다.

 

권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굉장합니다.

이렇듯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는 말씀에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에서 ‘승리의 봄’을 맞이하신 대성인의

확신과 실증이 담겨 있다고 배견됩니다.

 

대난에 잇따른 대난. 황송하지만 보통 같으면

병으로 쓰러지거나, 신경이 이상해지거나,

살해되거나, 자살합니다. 부처의 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은 전부 이겨내셨습니다.

전 인류를 위해,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대불법(大佛法)을 말법만년진미래제

(末法萬年盡未來際, 미래제를 다하다=미래영원)에

전해 남기기 위해 살고 또 꿋꿋이 사셨습니다.

 

우리는 이 대자대비를 깊이 배견해야 합니다.

“문하여, 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승리를

잘 보아라. 그대도 뒤를 이어 꿋꿋이 살아라.”라는

대성인의 마음에 묘이치니는 얼마나 감동했을까요.

본디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도 오랜 세월

함께 싸운 동지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행복의 봄’을 쟁취해야 합니다. 후배가

그 모습을 보고 ‘아, 잘됐다. 신심을 지속한

사람은 저렇게 훌륭해지고 행복해지는구나.’

하고 기뻐할 수 있을 만한

역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도 이 10년 만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승리의 봄’을 쟁취했습니다.

 

전부 광포와 동지를 위해서라는

일념이었습니다.

어쨌든 고생한 벗을 위해서라도 선배는

단연코 승리한 모습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승리는 세간적인

겉모습이나 표면적인 명예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신앙자로서 자기

인생의 사명을 상쾌하고 당당하게 총

마무리한 무관(無冠)이면서 위대한 경애의

실상(實像)이 바로 진실한 승리입니다.

 

그리고 ‘봄’에는 일제히 꽃이 핍니다.

그러나 그 전에 꽃들은 일단 추위를 충분히

겪어야 합니다. 만약 ‘겨울’을 모르면 어떻게 되는가.

봄에 피는 식물은 가을이 되면 ‘휴면(休眠)’

준비에 들어갑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약 겨울에 휴면하는 도중에 기온이 올라

잠에서 깨면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싹이 미숙한 채로 돋기 시작합니다.

그 상태에서 다시 추워지면 싹은 말라버려 죽고 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식물은 충분히 ‘

겨울’을 경험한 뒤가 아니면 피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봄의 개화를

준비하는 식물의 ‘지혜’입니다.

인생도 불도수행도 그 원리는 똑같습니다.

‘겨울’은 멋진 ‘봄’을 위해 충전하고

단련하는 때입니다. 그때 비로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불’을 향한 에너지가

축적되고 우주대의 확대를 내포한 생명

활동의 힘이 배양됩니다.

더욱이 그 에너지는 난을 만날수록 더욱

커집니다. 그리고 올바른 법을 따르는 사

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겨울’이라는 힘든 때에

신심을 향상하기 위한 세계에서 도망치거나

의심해서 힘과 복운을 충분히 쌓지 못하면

모든 것이 어중간해지고 맙니다. 더구나

‘만족스러운’ 인생을 보낼 수 없습니다.

 

‘겨울’ 동안에 어떻게 싸우고 얼마나 충실한

때를 보내는가. 반드시 찾아올 ‘봄’을

확신하며 어떻게 진지하게 사는가입니다.

때가 되면 자연계에는 꽃 피는 봄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생명과

우주의 리듬입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

겨울’인 채로 인생을 끝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봄’을 부르는 우주의 리듬에

생명을 합치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묘법의 불도수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신앙은 ‘영원한

행복의 날개’입니다. 고난을 이겨낼 때마다

복운을 쌓고 경애를 높일 수 있습니다.

금세(今世)에서 일생성불하면

삼세영원(三世永遠)히 ‘소원만족’이라는

생명의 ‘너른 하늘’을 유유하게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법리이자 생명의 리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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