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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생도 환희, 사도 환희
이케다 SGI 회장은 1991년과 1993년에
하버드대학교에서 두 번에 걸쳐 강연을 했습니다.
이 절(節)에서는 1993년 강연<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 때 말씀하신 불법의
생사관에 관해
다루고 광선유포에 꿋꿋이 살며 절대적
행복 경애를 구축한 사람은 ‘생도 환희,
사도 환희’라는 생명의 궤도를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나는 미국 최고봉의 학부인 하버드대학교의
초청으로 강연을 두 번했습니다.
그 중 두번째로 강연한 내용이 ‘생도 환희,
사도 환희’라는 불법의 생사관입니다.
하비 콕스 학부장(당시)은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관점을 소개하셨습니다.”
하고 평가하셨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생’도 ‘
사’도 영원한 생명의 한 측면입니다.
묘법에 기인한 생과 사는 영원히
상주(常住)하는 위대한 생명을
무대로 한 드라마입니다.
광포를 위해 꿋꿋이 싸우면 반드시 일생 동안에
절대적 행복 경애를 구축하고 확고하게
다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원히
‘생도 환희’ ‘사도 환희’라는
생명의 궤도를 나아갈 수 있습니다.
태어나는 장소도 지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는 혹성이 수없이 많다고 예측하는
연구가도 많습니다.
법화경에는 장대한 우주관이 펼쳐지고,
중생이 사는 국토가 무수히 많다고
설해져 있지만, 그것은 최첨단을 달리는
천문학의 지견과도 일치합니다.
선인만 사는 별도 있는가 하면 지구처럼
교활한 인간이 많은 별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멋진 음악을 들으면서
건강하게 장수하고 온갖 기쁨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별도 있을지 모릅니다.
내 마음의 작용과 대우주의 작용이 합치해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신이 바라는
장소에 태어납니다.(법화경에 “태어나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하므로”<법화경 360쪽>
하고 씌어 있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죽음을 잠에 비유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푹 자고 다음날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힘차게 눈을 뜨듯이 묘법을 끝까지 부르다
돌아가신 분은 죽음이라는 휴식을 취하고
바로 다시 태어나 광선유포의
진열로 돌아온다.”
대성인은 어서에서 임종에 대해 되풀이해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묘법을 부르는 사람의 임종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일불(一佛)이나 이불(二佛)이 아니라
백불(百佛)이나 이백불(二百佛)도 아니라
천불(千佛)이나 마중을 나와 손을 잡아 주신다니
환희의 눈물을 억누르기 어렵다.”
(어서 1337쪽 통해)
“당신이 임종할 때, 생사의 중간(생에서
사로 옮겨가는 사이)에는 니치렌이 반드시
마중을 나갈 것이다.”(어서 1558쪽, 통해)
“살아 계실 때는 생의 부처, 지금은 사의
부처, 생사 함께 부처입니다. 즉신성불(卽身成佛)
이라는 중요한 법문은 이것입니다.”
(어서 1504쪽, 통해)
세계의 대문호나 사상가들은 대부분
생명의 영원성을 느꼈습니다. 불법의 생명관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그러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만년(1907년, 79세 때)에 어느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는 것이 기쁘고 죽는 것도 기쁩니다.”(
《톨스토이전집》 수록)
대문호가 파란만장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서 다다른 부동의 경지의 일부분을
느끼게 하는 문장입니다.
생각해 보면 토인비 박사도 불법의
생명관에 깊이 공감하셨습니다.
우리는 인류 최고봉의 지성이 추구한
최고봉의 불법을 믿고, 행동하고,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훌륭한 인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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