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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생과 사는 불이(不二)
불교는 생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법화경의 철리를
바탕으로 ‘생’으로 현재화(顯在化)하고
‘사’로 잠재화(潛在化)하면서 생사를 한없이
지속한다는 ‘영원한 생명관’을 제시합니다.
생(生)과 사(死)는 생명이 변화하는 모습이며
반대로 말하면 생명은
생(生)과 사(死)로만 나타납니다. 범부의
눈에는 생명이 오로지 생(生)으로 시작해
사(死)로 끝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불법의 시점은 이 한계를 완전히
깨고 생(生)으로 나타나 사(死)로 지속하는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을 포착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불법은 생명의
변화상(變化相)으로써
생과 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요.
법화경 수량품에 약퇴약출(若退若出)이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이 ‘후퇴하는 것’
이 ‘사’에 해당하고 ‘나오는 것’이 생에 해당합니다.
또 수량품에서는 영원한 생명관에서 생명은
후퇴하거나 나타나거나 태어나거나
죽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는데
니치렌대성인은 <어의구전>에서 더욱 깊은
본유(本有)의 생사, 즉 본디의 생사이며
(본디의) 퇴출(退出)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생명관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현재화(顯在化)한 상태를 ‘생’,
잠재화(潛在化)한 상태를 ‘사’로 받아들이고
게다가 그 생사를 무한히
지속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생을 현재화, 사를 잠재화로 받아들이는
구극(究極)의 불법 철리는
얼마나 유구하고 위대한 생명을
간파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욱이 그 생과 사는 불이(不二)라고 설합니다.
생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잠재화된
묘한 힘이며 또 잠재화된 생명은 이윽고 연을
만나 현재화해 정력적으로 생을 영위하고
풍부한 색채로 개성을 발휘합니다.
마침내 그 생은 조용히 후퇴하여 사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 잠재화는 새로운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새로운 다음 생을 기다립니다.
말하자면 생은 그때까지 쉬면서 비축한
생명의 힘이 폭발하고 연소한 것이며 마침내
인생의 책 한권을 다 쓴 뒤 사로 향합니다.
그 우주에 명복되고 잠재화된 생명은
우주 생명의 힘을 자신에게 충전시키면서 생으로
비약할 때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본디의
생사이며 이 ‘우주 본연의 리듬’의
근원이 남묘호렌게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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