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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죽음이 인생의 의미를 높인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여기서는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라는
근본의 일대사를 올바르게 응시해
죽음의 무게를 의식하는 일이 인생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외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언젠가는’이라는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합니다.
청년은 물론 나이를 먹어도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을 외면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실상은 어떠한가.
실은 인간은 바로 다음 순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진, 사고, 급병(急病) 등 죽을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습니다. 그것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죽음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등
뒤에서 자신에게 다가온다.”
하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노력해야지.’ ‘이 일만 끝나면
노력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맙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무런 생명의 재보(財寶)도 쌓지 못하고
죽음에 당면하게 됩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인생이겠지요. 그때는 후회해도 늦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죽음이 3일 뒤가 되어도,
3년 뒤가 되어도 또 30년 뒤가 되어도
본질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죽어도 좋을 정도로 ‘지금’을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백년도
한 순간입니다. 문자 그대로 “임종이 지금”입니다.
도다(戶田) 선생님도 “실은 죽을 때를 위해
신심을 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삼세(三世) 영원에 걸친
‘마음의 재보’를 쌓아야 합니다. 인류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뒷전’으로 하거나
‘뒤로 미루고’ 살아갑니다.
생사일대사(生死一大死)라고 하는데 인생에서
생사만한 ‘일대사’는 없습니다. 이 가장 중요한
대사에 비하면 나머지는 모두 작은 일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임종’할 때 실감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사장이 되었다든가, 장사가
잘 되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누구를 어떤 식으로 사랑했는지,
상냥하게 대했는지, 어떤 식으로 차갑게 대했는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만족감이나 배신한 과오 등,
그러한 ‘인간적’인 부분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그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일이 인생을 향상시키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자각할 때 ‘영원한 것’을
구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보내자고
결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틀림없이 인생은 느슨해지고 무료해지지 않을까요.
‘죽음’이 있기에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현대문명은 ‘죽음을 망각한 문명’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동시에 ‘욕망을 방치한 문명’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문명도
‘생사’라는 근본 대사를 회피하면 하루하루
목적 없이 사는 타락한 생활에 바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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