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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품 강의 30
【본 문】
爲凡夫顚倒 實在而言滅 以常見我故 而生驕恣心
위범부전도 실재이언멸 이상견아고 이생교자심
이 본 부 텐 도 지쓰 자이 니 곤 메쓰 이 조 켄 가 코 니 쇼 쿄 시 신 호
放逸著五欲 墮於惡道中 我常知衆生 行道不行道
방일착오욕 타어악도중 아상지중생 행도불행도
호 이쓰자쿠고 요쿠 다 오 아쿠 도 추 가 조 치 슈 조 교 도 후 교 도
隨應所可度 爲說種種法
수응소가도 위설종종법
즈이 오 쇼 카 도 이 셋 슈 주 호
범부가 전도하였기 때문에 실제는 있으면서도 멸한다고 말한다.
항상 나를 보고 있는 고로 더구나 驕恣(교자)의 마음을 일으키고
放逸(방일)하며 五欲(오욕)에 집착하여 惡道(악도) 속에 떨어지리라.
나는 항상 중생이 道(도)를 행하지 않음을 알고, 응당 제도해야
할바에 따라서 그를 위하여 종종의 法(법)을 설한다.
【강 의】
이전에 나온 전도된 중생과 같은 취지이다. 부처가 언제나 있다고 생각하면 교만한
마음이나 방자한 마음을 일으켜 오욕에 집착해서 악도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는 도저히
성불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는 방편으로서 입멸(入滅)을 설한다. 어디까지나 민중의
성장과 자립을 위해 법(法)을 설한다. 이것이 부처의 자비이다. 그러나 범부전도란
참으로 인간 심리의 변화를 정확히 지적한 말이다.
나습의 명역(名譯)이다.
부처를 고대하며 그 가르침으로 구제받기를 원(願)하면서도, 부처에게
응석부리고 점점 자신의 약한 마음에 잠식당해 불도 수행을 태만히 하여
결국에는 악도에 떨어지고 만다.
모처럼 삼세영원의 법(法)을 만났으면서도 눈 앞의 이해관계나 욕망에 눈이
어두어져 믿기도 하고 의심도 하며 동요되기도 한다.
도다(戶田)선생님은 "불법상에서 보지 않고 세간상으로 어본존을 보고 의심하는 자는,
세상을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관에 있어서 영원한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멸(滅)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야말로 그러한 변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달관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부처의
경애로 끌어올리려고 하시는 부처의 노고를 엿볼 수 있지 않은가.
대성인은 이케가미(池上) 형제와 그 부인들에게 "처음에는 믿고 있어도 세간(世間)이
두려워서 묘법(妙法)의 신앙을 버리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 그 중에는 오히려 처음
부터 비방하던 사람들 보다도 강력히 비방하는 사람들이 또 많이 있다" (어서 1088쪽,
취의)고 가르치셨다.
처음부터 비방하던 사람들보다도 강력히 비방한다 - 묘법에 불신을 일으켜 퇴전하는
전도된 인간들의 방정식이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에게 "다만 세간(世間)의 유난(留難)이 와도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어서 1143쪽, 취의)라고 말씀하셨다.
세간의 저차원의 중상을 문제 삼지 말고, 이 성불의 직도를 명랑하게 걸어가야 한다.
확고 부통한 자기자신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도다(戶田)선생님은 "구원(久遠)의 범부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또 자신을 훌륭한
범부라고 긍지를 갖고 말씀하셨다. 우리들도 어디까지나 묘법의 범부,
깊은 마음을 가진 인간왕자였으면 한다.
행복을 향한 무상의 道(도)란 법화경이니라.
다음에 아상지중생 행도불행도 수응소가도 위설종종법이라고 있다.
부처는 항상 민중이 불도 수행에 면려하는가 아닌가를 알고, 적절한 구제방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법을 설한다는 것이다.
이 행도불행도에 대해 어의구전에서는 "지금 니찌렌(日蓮) 등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함은 행도(行道)이며 부르지 않음은
불행도(不行道)이니라"
(어서 758쪽) 고 말씀하셨다. 또 "도(道)란 법화경(法華經)이다"(어서 758쪽) 라고도
말씀하셨다.
도다(戶田)선생님은 "여기서는 어본존의 위대한 힘을 설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행도란 어본존을 믿게 하여 절복 하는 것, 불행도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본존은 그것을 아시고 그 사람을 태도에 따라서 어떻게 구제할 까를 생각하시어
벌(罰)과 이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심(信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워하시지는 않으므로 그것에 응해서 구제해 가는 것입니다. 행도, 불행도를
부처는 똑바로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라고.
밝고 즐겁게 행복의 대도를 나아가자
누가 싸우고 있는가, 싸우지 않고 있는가. 어본존은 우리들 범부의 생명 속 깊이까지
전부 알고 계신다. 우리들은 이 명(冥)의 조람(照覽)을 확신하고
똑바로 전진하면 된다.
도(道)이다. 우리들이 걷고 있는 것은 묘법이라는 도(道)이다.
그리고 이 묘법을 세계에 넓히는 광선유포라고 하는 무상도(無上道)이다.
최고의 행복의 대도(大道)이다.
대도(大道)의 노래, 민주의 시인 휘트먼의 울림이 내 마음에 다시 떠오른다.
혼의 전우(戰友)이다.
"걸어서 쾌활하게 나는 대도를 걷기 시작한다."
"앞으로 나는 행운을 구하지 않겠다. 이 나자신이 행운이다."
"집안에서의 푸념이나 아는 체 하거나 흠을 들추어 비판하는 것은 아주 싫증이 난다.
강하게 만족하게 나는 대도를 여행한다.(시집 풀잎 제3문명사)
푸념이나 아는 체하는 것이나 흠을 들추어 비판한다. 시인(詩人)도 인간계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낮은 차원은 웃어 넘겨 버리라고 호소하고 있다.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행복 그 자체이다.
우리들은 이런 기개로 인류공헌의 대도를 똑바로 전진해 나가다. 활기차게
환희와 우정의 휘파람을 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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