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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부처와 같이 서로 존경하다’
대성인은 모든 사람이 개성을 살리는 단결을 ‘이체동심’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이체동심’이야말로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로
꽃피우는 확고한 조직론입니다.
‘이체’–사람은 저마다 사명도 적성도 상황도 다릅니다.
‘동심' – 그러나 마음은 하나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이체이심(異體異心)’이면 제 각각이 되고 맙니다. ‘동체동심(同體同心)’은
개성은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입니다. 이것은 결국 전체주의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개개인이 간직한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위대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사람이 인간혁명을 하면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줍니다. 희망을 줍니다. 확신을 줍니다. 촉발이 촉발을 낳고 그 연쇄작용이
위대한 변혁의 힘을 발휘합니다.
대성인은 문하에게 늘 ‘사이좋게 서로 격려하십시오’
하고 지도하셨습니다.
<법화행자봉난사>에는 평소에 문하들이 모두 모여
대성인의 편지를 읽고 법문을
공부하거나 일생성불과 광선유포를 목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좌담회나 협의회 등이겠지요.
본디 불도수행은 혼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명문명리의
바람은 심하여 불도수행의 등불을 까지기 쉬우니라”
어서 1440쪽)이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서로 격려하고 서로 지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 선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불도수행은 늘 장마(障魔)와 벌이는 투쟁입니다.
끊임없이 악연과 악지식
속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라고 있듯이
현대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불도수행을 하려면 악연 속에서 범부가 성불하는
길은 인간으로서 빛나는 길
이외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도수행을
성취하려면 반드시
선지식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숭고한 목적관을 바탕으로 한 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소중한 광선유포의 조직을 절대로 파괴하면
안 됩니다. 건설은 사투.
파괴는 순간입니다.
알기 쉬운 예가 이케가미 무네나카와 무네나가
형제가 단결하여
보여준 투쟁입니다. 아버지 야스미쓰가 형인
무네나카와 의절한 사건은
매우 유명합니다. 그 두 형제의 아버지인
야스미쓰의 배후에는 고쿠라쿠사 료칸의
획책이 있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형 무네나카와 의절하고 동생
무네나가에게 가독상속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 무네나가는
가독상속을 이어받을 것이냐
아니면 신심을 관철할 것이냐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대성인의 격려를 받고 형과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대성인은 이케가미 무네나카의 의절을 해결하는
열쇠는 ‘단결’에 있다고
간파하셨습니다. 그것도 형제의 부인들까지
힘을 합쳐 네 사람이
단결하는 것이 마를 물리치는 핵심이라고 지도하고
<형제초>를 끝맺으셨습니다.
인간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사이가 좋다’든지
‘별로 좋지 않다’든지 또는
성격적인 면에서 ‘좋다’ ‘싫다’ 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그런 감정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좋고 싫음에 사로잡혀 불도수행을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거기서 마(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고 맙니다.
마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대성인은 동지들 간에 서로 헐뜯고
험담하는 것을 이렇게
엄하게 훈계하셨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서로 이야기하십시오”
(어서 1172쪽. 통해) “조금의 과실은 모르는
척하십시오”(어서1176쪽. 통해)
“언짢은 일이 있어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고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어서 1178쪽. 통해) 모든 사람이 부처입니다.
상대도 불신(佛身)이기에 상대를
헐뜯는 일은 부처를 헐뜯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이기에 서로 존경하는 것입니다.
창가학회는 “당기원영(當起遠迎) 당여경불(當如敬佛)”
(법화경 677쪽)의 정신이
넘쳐흐르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헐뜯는 버릇이 생기면 “부단히 악념(惡念)에
주하여 악도에 떨어진다”
(어서 1382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와 같이 서로 존경할지어다”
(어서 1383쪽)입니다. 법화경 보탑품에서 석가와 다보가
서로 자리를 양보하듯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광선유포를 향한 신심’입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면
서로 으르렁거릴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대성인은
적 앞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문하들의 어리석음을 수도 없이 훈계하셨습니다.
‘방휼지쟁’‘어부지리’라고 엄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어디까지나 ‘같은 뜻’을 세우고
서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차원은 다를지 모르지만 ‘대화’는 선(善)입니다.
왜냐하면 대화는 연대를 구축하고
단결을 낳기 때문입니다. ‘거절’은 악(惡)입니다.
왜냐하면 분단을 초래하고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대화해야 합니다. 상대방과
다른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화하다
보면 서로 다른 점이 있어도
신뢰가 싹틉니다. 사회에서도 대화는 평화를
구축하는 주춧돌이고 거절은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대성인은 문하에게 늘 대화하고 이체동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라도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면 목숨을 걸고 도와준다”
(어서 1132쪽. 통해)
“아무쪼록 스루가 지방의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라고 전해주십시오”
(어서 1435쪽. 통해) 등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묘법의 동지는
금세에 늘 이야기하고 영산정토에 가서도 서로
수긍하며 이야기하십시오”
(어서 900쪽. 통해)하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광선유포를 위해
싸운 동지의 유대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과는 금세에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 경애혁명하면 됩니다. “난실(蘭室)의 벗과
사귀어 마무(麻畝)의
성(性)으로 되었구나”(어서 31쪽)입니다.
인간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또 좋게 바뀌지 않으면 신심이 아닙니다.
“비둘기가 화(化)해서 매가 되고
참새가 변해서 합(蛤)이 되니”(어서 31쪽)
묘법의 동지는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광선유포라는 멀고도 험난한 길을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
선지식이 되어 이체동심으로 단결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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