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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바로 니치렌불법의 근간
이 절에서는 니치렌대성인이 강조하신 ‘사제’의
중요성을 들어 ‘사제불이가 바로 광선유포를
영원하게 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체동심’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사제불이’
끝까지 사는 것입니다. ‘사제불이’가 바로 ‘이체’를
‘동심’으로 만드는 요체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항에서도
신심을 힘쓰는 이케가미 형제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송구스럽지만 두 사람이 함께 니치렌을
(스승으로서) 존귀하다고 생각하십시오. 만약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 두 사람에 대한 (제불. 제천 등의)
수호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십시오”(어서 1108쪽. 통해)
한사람 한사람이 스승에게 마음을 맞춰 광선유포를 위해
전진하겠다고 깊이 다짐해야 이체동심의 단결이
단단해집니다. 거기에 묘법의 공력이 찬연히 발휘됩니다.
성훈을 배독하겠습니다.
“니치렌의 제자라고 말하며 법화경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니치렌과 같이 할지어다. 그렇게 한다면
석가. 다보. 시방의 분신. 십나찰도 지키시리라”(어서 989쪽)
“만약 법사에게 친근하면 조속히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이 스승을 따라서 배우면 항하의 모래 수만큼 부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어서 1070쪽. 통해)
“제자와 스승의 마음이 다른 기원은 물 위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아서 이루어질 리 없다”(어서 1151쪽. 통해)
“법화경의 대해와 같은 지혜의 물을 받은 근원의
스승을 잊고 다른 곳에 마음을 옮기면 반드시 지옥
등의 육도를 떠돌아 괴로움의 생사를 헤매는 화(禍)를
당할 것이다”(어서 1055쪽. 통해)
성훈 하나하나에 명확히 나와 있듯이 불법의 진수는
‘사제’에 있습니다. 닛코 상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의 이 법문은 사제의 길을 바로잡아 성불한다는
가르침이다. 사제의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똑같은 법화경을 수지해도무간지옥에 떨어지고 만다”
(<사도지방법화강중전답서>)
‘사제불이’가 바로 성불을 결정짓는 근간입니다.
그리고 ‘사제불이’에 바로 광선유포를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논한 대로 닛코 상인과 배신자의 무리인
오노승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사제불이’입니다.
닛코 상인은 니치렌대성인을 ‘말법의 어본불’로
올바르게 배알하고 어디까지나 자신을‘니치렌
대성인의 제자’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비해 오노승은 권력에 아첨하고 탄압을 두려워해
어리석게도 자신들을‘천태사문’이라고 자칭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민을 위해 한자와 가나(일본 고유의 글자)를
섞어 쓰신 대성인의 편지 등을 스승의 치욕이라고 하면서
불태워버리거나 풀어서 다시 종이로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닛코상인만이 한자나 가나를 섞어 쓴 어서를
소중히 지키고 장차 번역하여 중국과 인도 등 세계로
전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하셨습니다. (닛코 상인은
“일본의 대성인의 성훈도 광선유포할 때는 또한
가나문자를 번역하여 인도와 중국에 유통해야 한다”
<어서 1613쪽. 통해>하고 말씀하셨다)
엄숙하게 ‘사제불이’를 관철하신 닛코 상인과 그러지 못한
오노승의 차이는 너무나 뚜렷했습니다. 광선유포는
‘사제불이’를 관철해야 성취될 수 있습니다.
‘사제’라는 기둥이 없으면 자신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시대의 상황에 휩쓸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없으면 난을 만났을 때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닛코 상인은 대성인이 입멸하신 뒤에도 반세기가 넘는
동안 사제불이의 준엄한 투쟁을 관철했습니다. 열렬한
집념에서 나온 파사현정의 법전은 오노승의 사의(邪義)를
완벽히 무너뜨렸습니다.
도다 선생님이 서거하신 지 50년이 됩니다.
나는 선생님의 직제자로서 한 점의 거리낌도 없이
만년에 빛날 ‘제자의 길’ ‘후계의 길’ ‘불이(不二)의 길’을
규범으로서 확립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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