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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25-5 생애‘제자의 길’을 관철하다

by 행복철학자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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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제자의 길’을 관철하다

일본 불교가 타락한 원인은 사제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니치렌 대성인의 믿음을 바탕으로

창가학회는 삼대 회장 그 중에서도 이케다 선생님이

사제의 길을 철저히 걸어왔기에 광선유포의 길을

열었다고 말합니다.

 

왜 일본 불교는 타락하여 이상해지고 말았는가.

니치렌대성인은 ‘그 이유는 스승을 가볍게 보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히에이산은

일본 불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창시자인 전교대사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진언종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도 유행을 타고 싶다’

“나의 스승이신 전교대사는 아직도 이 사실을 상세하게

배우시지 않았느니라. 한토에 오래 계시지 않은 고로

이 법문은 황당히 보았으리라 생각하고”(어서 280쪽)

즉 “우리 스승인 전교대사는 진언종에 대해 자세히

공부를 하지 않으셨다. 중국에도 오래 유학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전언의 법문은 대략적으로 밖에 알지 못한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자기들이 더 잘 안다’ ‘자기들이 더 공부했다’

‘스승은 잘 모른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증상만입니다.

그리고 스승인 전교대사를 버리고 유행하던 진언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실은 전교대사는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언은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에 관한 역사는 <선시초>에 나와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위대함을 알지 못했기에 히에이산은

‘진언의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성인은 “근본인 전교대사의 대원적이 되었느니라”

(어서 369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

전교대사의 대원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악과 싸워야 할 때 제자가 싸우지 않았습니다.

스승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은 좋은 사람인 양

싸우지 않고 난을 피했습니다. 교활한 자들이었습니다.

또 거슬러 올라가 중국의 천태종에서도 똑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스승인 천태대사가 사망한 뒤

인도에서 새로운 경전이 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천태대사는 이 경전이 어떤 경전인지도 모르고

파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어리석게도 ‘이 경전이 법화경보다

뛰어나다’는 사의를 믿고 말았습니다. (“천태는 보시지

아니하였으므로 천태의 말학들은 지혜도 알았기 때문에

그런가 하고 생각하였느니라”<어서 301쪽> 등)

 

인간의 마음은 무섭습니다. 스승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만 살 길을 찾았습니다. 가짜 신심입니다.

축생의 마음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전멸한 가운데

도다 선생님은 홀로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고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마키구치 선생님)의 광대무변한 자비는

저를 감옥까지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

(모든 불국토에 늘 스승과 함께 태어난다)는

묘법연화경의 한 구절을 몸으로 읽고 그 공덕으로

지용보살의 본사를 알아 법화경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신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마키구치 선생님의 3회기 법요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숭고합니까. 이것이 학회가 나아가는

‘사제의 길’이자‘불법의 길’입니다. 스승과 함께 대난을

받으면서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와 천양지차입니다. 불법은 넓히면

당연히 난이 일어납니다.

 

법화경 권지품에 “악구매리(惡口罵詈)”(법화경 418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대성인도 이 어서에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난이 일어나면

박해를 두려워하고 공교롭게도 은혜를 입은 스승을

나쁜 사람으로 만듭니다.

 

스승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은 난을 피해서 도망칩니다.

이 얼마나 비겁한 짓입니까.

나도 오로지 혼자서 도다 선생님을 지켰습니다.

혼자서 도다 선생님을 끝까지 모셨습니다. 학회의

‘전통 2월’도 오로지 ‘도다 선생님께 보은하자’는

일념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1952년)는 도다 선생님이 화장은 되셨지만

좀처럼 홍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은 으스대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도다 선생님이 “어쩔 수 없구나. 이제 슬슬

다이사쿠를 내보내 볼까” 하고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스승의 엄명이었습니다. ‘하겠습니다’ 나는 스승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돌파구를 열어 길을 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광선유포의 ‘대도’를 열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늘 “다이사쿠에게 맡겼으니 나는

유유히 위스키나 마시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이사쿠가 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이렇게

확신하셨습니다. 이 사제불이가 바로 학회의 진수입니다.

 

어쨌든 나에게는 ‘니치렌 대성인’과 ‘도다 선생님’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본존’과 ‘도다 선생님’

그리고 ‘성실’이 내 ‘세 가지 보물’입니다. 나는

정말로 승리했습니다. 온갖 욕설과 험담을

들으면서 가장 올바르게 살아 신심으로 승리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승리했습니다. 불법의 눈으로, 삼세의

눈으로 보면 내가 가장 승리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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