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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익(顯益)과 명익(冥益)
본존님을 신수(信受)하여 엄연히 나의 몸에
명확히 나타나는 이익과 큰나무의 성장과도 흡사한 이익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빛은 어본불을
수지하여 신행학에 면려하는 사람 전부에게 찬란하게 비추면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덕의 꽃은 각자나 각 가정에
만발하게 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공덕이 나타나는 형태를 가리키는
'현익'과 '명익'을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불법에서 설하는 공덕 또는 이익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함께 우리들의 생활상에 어떤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이 공덕과 이익이 나타나는 형태에 현익과 명익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현(顯)이란 '명백하다' '명확하게'라는 의미이고, 명(冥)에는
'깊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익이란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이익을 말하는 것이며,
명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서의 이익을 말합니다.
또 현익과 명익의 시간의 흐름 위에서 파악할 경우,
현익은 즉시로 나타나는 이익, 명익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나타나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법이 지향하는 목적은 말할 나위도 없이 성불(成佛)입니다.
성불은 현대적으로 표현한다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행복경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불법의 가르침은 모두 성불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에서 설하는 일체의 가르침은 구극의 목표인
성불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해야만 그 근본 뜻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입회 전 생활을 되돌아봅시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인생의 고뇌라는 파도 사이를 표류해 왔습니다.
미혹과 비탄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행복을 맛보아도 그 행복에는 영속성이 없고 다
음의 행복으로 연결되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 위에 뜬
풀과도 같은 허무한 행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러한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찾았으며, 또한 시험도 해 왔습니다. 어떠한
인생의 고난에 부딪쳐도 유유하게 이겨 갈 수 있다는 확고한
지침과 명확하고도 진실된 가르침을 항상 구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믿어 틀림없는 성불을 가능케 하는 진실한
가르침을 진정코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가르침이 바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인 것입니다.
이 어본존님을 수지한 당초에 우리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잘 하지도 못하는 근행 창제를 계속해 가는 사이에
가까운 주변에서 절실한 고뇌나 마음을 괴롭히는
갖가지 장해, 예를 들면 병이나 금전면의 괴로움, 가정불화라고
하는 고뇌가 눈에 띄게 해결된 현익을 모두가 한결같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초신(初信)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초신의 공덕을 얻게 된 것은 성불에의 첫 번째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도다 제2대회장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현익이 나타나는 때를
가르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초신 때 생사에 관련되는 중대위기에 직면했을 때입니다.
정말 이러한 경우에 현익의 실증을 체험한 사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신의 공덕에서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위대함을 확신하여
그 후 흐르는 물과 같은 신심을 10년, 20년 계속해 갔을 때
되돌아보면 거기에 숙명전환, 인간혁명의 빛나는
공덕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명익
그 자체를 말합니다.
물론 그 동안에 간혹 크고 작은 수많은 현익을 체험하면서
나날을 보내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체가
순조롭게 평온하게 성불(成佛)이라는 절대적인 행복경애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과 본존님에게 대한
보은감사(報恩感謝)의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명익이 바로 불법의 공덕, 이익의 제호미(醍歸味)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신심 20년의 관록'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명익의 실증이라 하겠습니다.
현익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명익과 비교할 경우, 현익은 명익보다도 적은
공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치렌 대성인은 현익과 명익에 대해 기원과의 관계에서
'현기현응(顯祈顯應)' '현기명응(顯祈冥應)' '명기명응(冥祈冥應)'
'명기현응(冥祈顯應)'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현기현응' 현기란 명확한 기원을 말하는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기원을 뜻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특히 강한 기원으로 본존님에게 원해 가면
현응 즉 현익이 나타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의 '현기명응'은 강하게 소원을 걸어 기원한 경우에
그 결론이나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것 같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결과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의 '명기명응'은 특히 이렇다 할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으나
나날이 담담하게 창제하고 광포를 생각하는 기원을 계속해 갔을 때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나무들이 1년, 2년 이렇게 세월이
거듭되면 이윽고 큰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커다란 명익을 얻는 경우를 말합니다.
네 번째의 '명기현응'은 아주 급한 기원은 없어도 해마다, 신심을
지속해 가면 유사시에 엄연히 수호를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어쨌든 본존님을 수지하고 나날이 끊임없는 근행 창제와 묘법의
홍통에 면려하는 우리들의 생활에는 현(顯)으로 혹은 명(冥)으로
위대한 불법의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여 더욱더 신행학의 실천에 면려해 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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