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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불이(依正不二)
환경과 자기 자신은 일체
일체를 결정하는 나의 '일념'
우리들은 각자각자가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생활 하고 있습니다.
같은 환경인 것 같이 보여도 거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상태가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시다.
학생이라면 배워 온 뉴턴의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상기
할지도 모릅니다. 배가 고픈 경우라면 맛있는 사과라고 먹고
싶다고 생각하겠지요. 또 이것을 판다면 얼마나 받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一員)
사람들은 이와 같이 천차만별로 받아들이면서 환경에 작용을
하고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생활상(生活像)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로서는 환경을 무시한 자기는 없으며,
또한 자기 없는 환경도 있을 수 없습니다.
불법에 설해지는 '의정불이'의 원리는 자기 자신과 환경의
관계성을 보다 깊게 간파하여 밝힌 가르침입니다.
'의정'이란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를 줄인 말입니다.
의보란 일체의 환경을 말하고,
정보란 생명주체인 우리들 자신을 의미합니다.
생명 주체인 자기와 그 환경은 형태상으로는 두 가지의 별개의
존재로 판단되겠지요.
그러나 보다 깊게 파고들어 가서 본다면 환경과 자기 자신은
일체불이(一體不二)라고 불법은 설하고 있습니다.
이 '의정불이'의 원리를 안다는 것은 현대인에게 있어 특히
중요한 일입니다.
공기나 물이 더러워지고 자연이 파괴되어 공해병(公害病)이
발생한다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심각한 문제에
오늘날의 사람들은 부딪치고 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결국은 동물이나 식물을 비롯하여
일체의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복종하고 독점당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는 잘못된 자연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인간도 또한 자연계의 일원입니다. 인간이
자연계의 통솔자인 듯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거만인 것입니다.
환경인 자연계와 일체가 되어 조화를 유지해야만 비로소
행복한 생활을 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법에서는 자연계 그 자체가
생명적 존재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를
분리하여 대립해서 생각한다면 그 진실한
모습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의 실(絲)'을 파괴하는 공해
최근 과학자 사이에서도 이 불법의 사고방식에 가까운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일체의 생물은 다른 모든 생물과 결부되어 있다"
"어떠한 생명이라도 본래 고립되어서는 살 수 없다"
즉 일체 자연계에는 섬세한 '생명의 실(사<絲>)'이 둘러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실'을 무시하고 자연을 욕망대로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것은 스스로의 생명도 소홀히 하는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불법에서는 더욱이 대우주도 생명이라고 포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정'으로서 나누어져 있는
어떠한 존재도 모두가 우주생명에 내재하는 힘과 법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의정'이라 해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주생명에 일관된 힘과 법의 나타남의 차이에 따라 '정보'로도
되고 '의보'로도 되었던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의정불이'의 원리에 대해 <서상어서>에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대저 시방(十方)은 의보(依報)이고 중생은 정보(正報)니라.
비유하면 의보는 그림자와 같고 정보는 체(體)와 같으니라.
신(身)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
또 정보는 의보를 가지고 이를 만드느니라」(어서 1140쪽)
'정보는 의보를 가지고 만든다' 우리들의 생명은 환경세계가
지탱해 주고 있기에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체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있듯이 '정보가 없으면 의보도 없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경애에 즉응(卽應)하여 그에 알맞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환경과 자기가 '불이'의 존재라면 현재의 경우를 괴로움에
꽉 찬 세계로 하는 것도, 사는 보람과 기쁨에 넘친 세계로
하는 것도 결정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일생성불초>에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중생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도 청정(淸淨)하다고 하여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고 함도 토에 둘이 차이가
없으며」(어서 384쪽)
훌륭한 조화를 이루게 하는 묘법
자기 자신(중생)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토〈土〉)을 풍요하고
청정한 세계(정토)로 하는 것도,
고뇌에 찬 더러운 세계(예토)로 되게 하는 것도 자신의
생명(마음)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의정'에 일관하여 율동(律動)하는 무한한 힘과 법에
대해 언급했습니만, 대성인은 이 '힘'과 '법'에 대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명시하시었습니다.
<제법실상초>에는 「의정(依正)의 당체(當體)가 모두
일법(一法)도 남김없이 妙法蓮華經의 상(相)이라고 하는
경문이니라」(어서 1358쪽)고 있습니다.
이 우주생명을 꿰뚫는 '힘'과 '법'인 '묘법'을 자신의 생명에
개발해 갔을 때 생명력이 풍부하게 되고 환경과의 훌륭한
조화가 이루어지게 되며, 또한 환경 자체도
소생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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