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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학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by 행복철학자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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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사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애로 괴로움에 지지 않는 힘은

묘법에서 나타난다

'중생소유락'  뭔가 미래가 열린 듯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중생소유락의 인생이 되어야 하겠고, 또 그것을 위해 견실하게

신심에 면려해 가야 하겠습니다.

 

이 '중생소유락'이라는 말은 조석 근행 때에 읽는 수량품의

자아게 속에 나옵니다. "아차토안온(我此土安穩).

천인상충만(天人常充滿). 원림제당각(園林諸堂閣). 종종

보장엄(種種寶莊嚴). 보수다화과(寶樹多華果). 중생소유락

(衆生所遊樂)  (나의 이 땅은 안온하고 천인이 항상 충만해 있다.

원림의 여러 당각은 종종의 보배를 가지고

장엄하며 보수화과가 많고 중생이 유락하는 곳이니라)"

불국토를 묘사한 것입니다만,

 

먼저 '중생'이란 우리들

일체를 포함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성별, 신분, 민족, 나라,

직업 등의 차이에 관계 없이 '유락'할 수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주군이나 동료로부터 차가운 눈으로 배척당하여

괴로워하고 있었던 시조깅고에 대해 「중생 중에 귀하가

빠지시겠느뇨」(어서 1143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사정이 있을지라도 드시 '유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유락'입니다만, 이것은 특히 즐겁고 유쾌하게 논다는

의미의 유락과는 다릅니다.

해야 할 일을 피하고, 괴로운 현실사회의 구속을 도피하여 어떠한

놀이에 흥겨워하고 즐긴다 

 

그러한 세간에서 말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를 유락해

가는 것입니다. 냉엄한 현실에서 도피하여 안도의 숨을 쉬고 즐기고

있는 듯이 보일지라도 생명과 생활의 근저로부터의 안심감이

없다면 그것은 결국 일시적인 유락, 결실이 없는 락이며 진실한

유락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생 그 자체를 유락한다'='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유락의

경지(境地)로 된다',

 실은 이것이 '중생소유락'의 '유락'인 것입니다.

자유자재로 인생을 사는, 사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워 어찌할 수

없다고 하는 경애가 불법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유락'의 두 글자를 분석해 봅시다.

 

'유(遊)'란 자유자재로 인생을 구가(謳歌)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오전답서>에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어서 1124쪽)고 있습니다.

 

또 '낙(樂)'이란 생명의 오저로부터의 즐거움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적 조건이나 국토이든 또 고난이나 장해가 있든

유유하게 마치 사자왕과 같이 극복하고 마음의 오저로부터

인생을 유락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한 전제로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력, 지혜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일체중생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은 없느니라

」(어서 1143쪽)고 대성인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중생소유락의 원천은 묘법인 것입니다.

 

현세가 안온할 뿐만 아니라 후세에 선처(善處:혜택 축복받은 곳)에

태어난다고 법화경 약초유품에 약속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불법의 유락이 현세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과, 또 안온이라 해도 그것은 무풍(無風)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온'이라 하면 고통스러운 일, 괴로움, 고난이 없는 상태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만, 불법은 그러한 도피의 자세는

아닙니다. 그와 같은 무풍 상태는 히려 괴로운 것이며,

사실상 어떠한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것을 냉정한 눈으로

응시해야 할 것입니다. 요는 냉엄한 현실의 격동을 즐거워하면서

이겨 내 는 생명력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향상과 환희가 일체(一體)가 되도록 하는 지혜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고(苦)는 고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이라고 열어서」

(어서 1143쪽)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여 그것을 성장의

도약대로 해 가는 현명한 자세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고락의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락의 파도를 리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흔들리기 쉬운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인 행복에 끝까지

사는 사람이 진실로 강한 것입니다. 결국 참된 유락은 妙法蓮華經의

당체로서 빛나는 데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묘법의 당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행화타의 제목이 불가결합니다.

이케다 SGI회장은 부자석신명즉중생소유락

(不自惜身命卽衆生所遊樂)이라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묘법 유포에 면려하는 가운데 진실한

환희와 충실한 인생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광포에 사는 인생이 참된 중생소유락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이케다 SGI회장은 참으로 유쾌한

경애는 책임감, 용기, 도전의 자세가 있는 곳에

긴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견주어 심사숙고해 볼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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