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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의 대공덕은 명익에
「마쓰노전답서」에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 조금도 승열(勝劣)은 있을 수 없도다.
그 까닭은 우자가 가진 금이나 지자(智者)가 가진 금이나
우자가 켜 놓은 불이나 지자가
켜 놓은 불이나 그 차별은 없느니라.」(1381쪽)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 범부가 부르는 제목의 공덕에는 차이가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다.
(대답하여 말하면) 그 공덕에는 승열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자가 가지고 있는
금과, 지자가 가지고 있는 금에 가치의 차이는 없고, 우자가 켠 불과 성인이
켠 불에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어본존의 공덕은, 그 사람의 입장이나 재산 등에는 일체 관계없이 평등하게 나온다.
어떠한 사람도 제목을 부름으로써, 반드시 행복하게 되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어본존의 공덕에는 현익과 명익이 있다.
병이라든가, 업무상의 곤란이라든가, 뭔가 문제가 있을 때에 엄연히 수호를 받아 금방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현익이다.
그와 동시에, 마치 바닷물이 밀물이 되듯이 복운을 쌓아,
풍요한 대경애를 점차로 구축해 간다.
그 경애만 구축하게 되면 어떠한 인생의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무너지는 일은 없다. 금세 뿐만 아니라 영원히 행복한 경애로 유락해 갈 수 있다. 이것이 명익이다.
예를 들면 태엽을 완전히 감아둔다면, 언제라도 탄력이 붙어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비축되어 있다. 느슨해져 있으면 유사시에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생명의 태엽을 감는 힘이 신심의 실천이며, 무슨 일에도 대응 할 수 있도록 충분히 힘을
완전하게 비축한 상태가, 명익에 가득 찬 인생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기필코 소원만족의 인생. 영원한 행복경애를 자연히 터득해 갈 수 있는 것이
묘법의 공덕인 것이다. 대성인도「아무리 법화경을 믿으신다 해도 방법이 있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칠(漆) 천통에 게의 발 하나 넣음과 같도다」(어서 1056쪽) -
아무리 법화경을 믿고 있어도 방법이 있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것은
천통의 옻에 게의 다리를 하나 넣어서, 옻을 소용없게 하고 마는 것이다 - 라는
말씀이시다.
아무리 진지하게, 착실하게 신심을 하고 있는 듯 해도, 방법이 있으면 공덕을 없애고 만다.
그것은 아주 소량의 청산가리 때문에 금방 죽고 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악의 인을 만드는
것으로서, 십사비방을 드시고 있는데, 그 중에 경선. 증선. 질선. 한선이 있다.
신심하고 있는 사람을 경시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원망하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열심히 이 만큼 신심을 하고 있는데 공덕을 느낄 수 없다라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이 네가지의 비방이 있는가 없는가를 자기에게 물어 봐 주시기 바란다.
경선. 증선. 질선. 한선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공덕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동지에게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을 명확히 말해 간다는 것은 자유이고,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생각해서 엄하게 말하는 것과 미워하는 마음이나 원망의
말은 같지가 않다. 그 점을 깊이 깊이 판별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본존 슬하에 모여, 광선유포로 전진하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가 불자이며,
묘법의 가족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존경하고, 신뢰하고, 격려하면서 이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 주시기 바란다.
그 사람에야말로 어본존의 공덕과 제천의 가호는 더한층 늘어 간다는 점을 확신해
주시기 바란다. (NSA 청년연수회 199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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