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사마
죽음을 초월한 삼세관
우리들이 불도수행에 면려하면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난다.
삼장이란 번뇌장, 업장, 보장이고 사마(四魔)란 번뇌마, 음마, 사마, 천자마다.
그런데 이 사마(死魔)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수행자 자신의 죽음. 불도를 온전하게 못하고 죽는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수행자의 죽음을 보고, 그 주위의 사람이 신심(信心)에
불신을 갖는 것. 모든것이 성불을 방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마의 작용이다.
전자(前者)도, 있어서는 안 되지만, 후자(後者)의 경우도 예리하게
마를 간파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즉 육체의 죽음은 삼악도에 떨어지는 인(因)이 되지 않지만
신앙심의 파괴는 삼악도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석존도 악연을 무서워하라고 <열반경> 등에서 강조한다.
니치렌(日蓮) 대성인도 문하가 죽었을 때, 유족에게 최대한의 격려를 하셨다.
고니치아마의 자식은 피치못할 사정으로 살인을 했고 그 때문에 자기도 죽었다.
대성인은 그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씀하신다.
“자식을 생각한 나머지, 당신은 법화경의 행자가 된 것입니다.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영산정토에서 재회해 얼마나 기쁨을 누리게
되겠는지요”(어서 934쪽, 통해)라고.
격려에는, 더욱이나 유족에게 하는 격려에 방정식 따위는 없다.
사람의 마음은 천차만별이다.
그런 상황 위에서 구름 낀 마음에 어떻게 푸른 하늘과 같은 마음을 되찾게 하는
진검승부와 같은 대성인의 진지한 격려의 심음(心音)이 전해 온다.
이 대성인의 행동은, 문하 사이에 스며드는 사마를 단절하는
대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성인은 “살아 계셨을 때는 생의 부처 지금은 사의 부처
생사 다같이 부처이니라”
(어서 1504쪽)라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생사 다같이
부처’라는 불법 삼세의 생명관과 생사를 바르게 보는 일이다.
또 바른 생명관에 비롯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생명인 동시에, 그 가운데 사마를 깨뜨리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