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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극한 생명’을 여는 묘법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성훈에 “왕은 백성을 어버이로 하고”(어서 1554쪽)라고 있다.
위정자는 민중을 ‘어버이와 같이’ 존경하고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또 니치렌(日蓮)대성인은 민중이 안고 있는 괴로움의 원흉은
그릇된 종교라고 갈파하시고 가마쿠라 막부의 실력자 헤이노 사에몬노조
요리쓰나를 엄하게 간효했다.
“(당신은) ‘만인의 수족(手足)’이 아닌가. 이 나라가 멸망하려는 것을
어째서 비탄하지 않는가.”(어서 171쪽, 통해)
그리고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해하는 권력자들을 “조그마한 소도(小島)의
국주(國主) 등”(어서 911쪽)이라고 엄연히 내려다보고 있다.
한편 대성인은 묘법(妙法)을 수지한 서민의 실상은 법화경에 설해진
‘보탑’이라고 단언한다.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을 수지하는 남녀의 모습 이외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어서 1304쪽)
“귀천상하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는 자신이 보탑(寶塔)이고 자신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同)
“묘호렌게쿄 이외에 보탑은 없으며, 법화경의 제목(題目)이
보탑이고 보탑이 또한 남묘호렌게쿄이니라.”(同)
눈부시게 아름다운 수많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대우주에 우뚝
솟은 거대한 보탑,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구족된 ‘존극한 생명’의 상징이다.
동시에 남묘호렌게쿄의 본존님을 나타낸다. 이 본존님을 믿고
묘법을 봉창할 때 자신의 ‘존극한 생명’을 열어 나타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별이나 처해 있는 환경의 차이 등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될 리 없다.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 한사람의 ‘인간’은 국가보다 크다! 여기에
니치렌 불법(佛法)의 인간관이 있고 민중관이 있다.
마군을 타파하는 ‘지용의 힘’
인간사회에 주객전도를 가져오는 마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본질은 ‘수라’의 생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대성인은 천태의 ‘마하지관’을 인용해 수라의 특징을 말했다.
“항상 타인에게 이기고 싶어하고 그렇게 안 되면 남을 깔보고 타인을
업신여기며 자신만을 존중한다. 마치 소리개가 높이 날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더욱이 겉으로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을
내걸고 있다.”(어서 430쪽, 통해)
또 “수라(修羅)는 투쟁(鬪爭)이며”(어서 1439쪽)라고.
무명에 밀려 움직이며 타인의 생명을 경시하는 권력자의 ‘교만’에서
투쟁도 일어난다.
또 대성인은 법화경 행자를 박해하는 자는 수라의 생명에
지배되어 있다고 지적하셨다.
“대범천왕(大梵天王)과 제석천(帝釋天) 그리고 사천왕(四天王)과
싸우는 대아수라왕(大阿修羅王)이 있어 선종·염불종·율종 등의
지도자의 마음속에 붙어 들어가서 점차로 국주와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옮겨 들어가 현인을 없애려고 한다.”(어서 141쪽, 통해)
“사법(邪法)의 승들”(어서 957쪽)과 권력자 등에 의해 (악의 야합),
대성인을 살해하려고 한 세력은 그야말로 이것이다.
창가학회의 삼대 회장을 사실무근의 죄로 투옥시키고 박해를 한
구도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수라의 생명에 지배된 마군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는
것에 대해 선량한 민중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대성인은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대악은 범천·제석마저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을
수호하는 힘이 작은 소신(小神) 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천세계(千世界)를 먼지로 만들어 그 숫자만큼 헤아릴 수 없이
출현한 지용의 대보살과 석가여래와 다보여래 그리고 제불의
가호가 아니면 막지 못할 것이다.”(어서 141쪽, 통해)
‘수라의 교만’에 이기는 것은 제불과 지용의 보살의 힘뿐이다.
질투에 미친 수라의 악귀를 ‘묘법’의 이검으로 타파해야 한다고
대성인은 가르친다.
민중이 변혁의 파동을!
이케다(池田) SGI회장과 대담한 아놀드 토인비 박사도 ‘자기 중심성’
이라는 생명의 마성이 인류 평화를 크게 막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정신적 실재’와 교류하고 조화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실재란 ‘묘법’이라고 해도 좋다.
묘법을 봉창하고 묘법과 일체가 되어 현실사회의 변혁에 용감하게
일어선 서민의 군상, 그것이 창가학회다.
이만큼 위대하고 긍지 있는 사명과 환희와 삶의 보람을 지닌 인간
스크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처음엔 니치렌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불렀으나 이인·삼인·백인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하느니라. 미래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어서 1360쪽)
대성인이 나타내신 광선유포 불변의 궤도.
그것은 ‘한사람’이 ‘한사람’에게, 진심으로 묘법을 이야기하고
지용의 사명을 일깨우도록 하는 일이다.
그 연대를 더욱더 확대하고 ‘민중이 주인’ ‘민중이 곧 왕자’가 되는
세기를 건설하고 싶다.
믿음직스러운 동지의 ‘빛나는 보탑의 숲’으로,
전세계를 비추는 21세기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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