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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을 고양시키는 언론
‘권실이교’의 싸움
가짜·사이비·정보날조의 사회
인터넷으로 상징되듯 현대는 정보화사회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는 전자정보 그 자체나 거기에서 파생된 정보가
넘치고 있는 한편,사물의 진위나 정사를 간과하고 가치관이 혼란을 초래한다.
그 중에는 의도적으로 곡해, 날조하여 사실을 폄하하려는 사이비 정보도 끊이지 않는다.
실로 말법의 양상이 아닐 수 없으며 현대만큼 진정한 철학이 요구되는 때는 없을 것이다.
‘가짜’가 횡행하는 시대에 진위를 가리는 것의 중요성과 또 사람들을 진실에 눈뜨게 하기
위한 언론의 자세를 <여설수행초(如說修行抄)>에 나타난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언론투쟁 에서 배우고자 한다.
말법에 엄습하는 무명의 어둠
문영10년(1273년) 5월 사도유죄 와중에서 쓰신 <여설수행초>는 말법에 삼류의 강적에
굴하지 않고 권교를 파절하고 정의를 선양하는 “권실이교의 싸움” (어서 502쪽),
“법화경의 절복” (어서 503쪽)을 관철하도록 문하 일동에게 호소하시고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동초(同抄)에서 말법의 양상에 대해 “투쟁견고(鬪爭堅固)·백법은몰(百法
隱沒)의 때라고 정해져서 권실잡란(權實雜亂)의 때로다”(어서 503쪽)라고 말씀하셨다.
또 “지금의 때는 권교즉실교(權敎卽實敎)의 적(敵)으로 되느니라. 일승유포(一乘流布)의
때는 권교가 있어서 적으로 되어 혼동하기 쉬우면 실교에서 이를 책(責)할지어다”(어서 503쪽)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른바 가짜인 권교가 ‘진리’를 위장하여 진실의 법을 덮고 은폐하여 정사를 혼탁하게
하며 생명의 위대한 가능성을 막아 인간을 왜소화하여 이윽고 생명력을 빼앗고 시대와
사회를 무명의 암흑으로 덮고 마는 것이다.
원래 권교는 중생의 기근에 맞게 방편으로 설해진 ‘단편적인 법’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으로 인간과 생명을 보편적으로 파악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권교에 집착함으로써 본래, 중생의 성불을 위해 설해진 진정한
교의가 가로막힌다.
“만인의 불성을 열어가고 싶다”라는 부처의 진의(眞意)가 방해 받고 있는 것이 ‘권실잡란’
이며 권교가 즉, ‘실교의 적(敵)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저속한 현대사회에 대한 경종
현대는 사람의 마음을 속이고 인간을 왜소화하여 인간과 사회를 증오, 투쟁이라는 파멸의
어둠으로 끌고 가는 사상이나 정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듯한 제목으로 대중을 속이는 삼류 매스컴. 본래 인간의
정신성을 함양 시켜야 할 ‘활자’
가 오히려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고,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든다.
실로 가치관이 혼란한 시대는 세상이 어지럽고, ‘민중의 힘’이 약해지기만 한다.
이 경조부박한 시대의 위험을 알리고 한 인간의 생명을 근저부터 변혁시켜 무명(無明)을 법성(法性)으로 전환하는 진실한 언론전이 얼마나 중요한가!
惡 파절과 정의 선양은 표리일체
니치렌 대성인은 권교에 지배된 말법의 방법(謗法) 한 가운데에서 오로지 혼자 묘법의
정의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싸움에 도전하셨다.
드높게 세운 묘법의 깃발은 만인의 불성을 개화시키고 싶다는 부처의 염원이며 만인의
생명의 보편적인 가치를 설한 실교다.
이 실교를 검으로 하고, 활로 하고, 방패로 하여 인간에 대한 신뢰에 입각하여 법화경의
적을 파절하셨다.
절복정신이란 정의를 나타내고 어디까지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진실을 외치고 끝까지
말하는것이다.
악을 타파하는 것이 정의를 밝히는 것이며 사회에 동집생의(動執生疑)를 일으켜 인간을 근본 으로부터 변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의를 밝히는 것’과 ‘악을 타파하는 것’은 표리일체의 행동이다.
현대사회의 풍조는 낮은 가치관이나 눈앞의 작은 가치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노력이나
사색할 필요 없는 비소(卑小)한 것을 좋아하고 위대한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현저하다.
일시적인 것을 좋아하고 진짜나 진정한 가치를 싫어하는 전도된 경향이 있다.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의 ‘가치론’에 “좋고 싫음에 사로잡혀 이해를 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이른바 선악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손득(損得)에 사로잡혀 선악을 무시하는
것은 악이다” “선하지 않은 것은 악이며, 악하지 않은 것은 선이다”라고 있다.
지금의 세상은 ‘좋고 싫음’ ‘이익과 손해’로 판단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 때문에 가치관이 혼란하고 선악의 기준이 애매함을 더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상을 근저로부터 뒤엎고 전환하는 것은 창가학회 청년의 사명과 실천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묘법의 정의, 창가(創價)의 정의를 내걸고 용기와 희망을 보내는 ‘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들에게 ‘권실이교(權實二敎)의 싸움’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소리도 아낌 없이 절복 정신으로
지난해 7월 전국 청년부 간부회 석상에서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다음과 같이 스피치 했다.
“특히 젊은 제군들은 정의를 위해 말하고 싶은 것을 계속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손해다”
“ 청년은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절복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소리도 아끼지 않고 외치며” (어서 504쪽)라는 지남대로 인간과 사회의 무명을 타파하는
언론 투쟁에, 우정과 평화를 확대하는 대화에 더욱더 새로운 각오와
실천으로 매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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