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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연다
용기와 집념의 기원
니치렌(日蓮) 대성인 불법(佛法)은 서원의 종교다. 이 서원을 관철하는
근본은 묘법(妙法)의 기원이다. 서원에 입각한 기원이란 감춰진 자신의
가능성의 신뢰이며 인간이란 이처럼 위대한가라는
인간의 저력을 발휘하는 방도라고 할 수 있다.
일념에 따라 현실이 ‘회전’
대성인은 여러 어서(御書)에서 법화경 행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단언하셨다.
예를 들면, <기도초>에서는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기원하는
기도(祈禱)는 울림이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고 그림자가 체를 따르는 것과 같으며
맑은 물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고 방제(方諸)가 물을 끄는 것과 같으며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고 호박이 먼지를 취하는 것과 같으며 밝은 거울이 물색(物色)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라”(어서 1347쪽)라고 말씀하셨다.
소리에는 울림이 있고 체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고 기원할 때 그 기원의 일념에 따라
자신의 생명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변화’가 생겨 현실에 ‘회전’이 시작된다.
그 간요는 오로지 ‘법화경의 행자의 기원’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법화경의 행자란 말법 광선유포의 대원에 끝까지 사는 사람을 말한다. 니치렌 대성인의
지남대로 신심(信心)수행에 힘쓰고 구체적으로 광선유포를 추진하며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이상을 실현하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만인이 부처, 만인을 부처로’라는 법화경의
철학을 어디까지나 깊고 강하게 확신해 파사현정의 마음으로 정의와 행복을 확립하는 사람이다.
앞서 〈기도초〉에서 제경(諸經)에 의한 기원이 아닌, 법화경의 행자의 기원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단언하신 배경에는 일체중생의 성불을 설한 법화경의 철학이 있다.
법화경 이전의 권경의 가르침에서는 이승(성문, 연각)은 성불을 허락 받지 않았다.
자리(自利)에 집착해 이타(利他)를 망실했기 때문에 40여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계속 탄핵을 받았다.
법화경의 깊은 은혜
그 이승이 법화경 적문에 이르러 비로소 기별(성불의 약속)을 받는다.
이승들에 대한 법화경의 깊은 은혜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기도초〉에서 “일체의 이승계가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하실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어서 1345쪽)라고 법화경의 행자 수호를 단언하셨다.
더 나아가 보살과 범부, 여인, 악인도 ‘법화경의 깊은 은혜’로 성불할 수 있었으며
법화경에 대은이 있는 이상, 성불의 근원의 법인 남묘호렌게쿄를 믿고 행하는
법화경의 행자를 수호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법화경의 명경에 비춰 볼 때 법화경의 행자 기원은 일체의 보살, 이승과 제천선신을
움직여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사람을 수호하는 것은 명백하다.
광포서원에 신심의 정수
따라서 우리들의 기원은 반드시 장마(障魔)를 타파하여 광선유포를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신념’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 강한 일념이 우리 안에 내재한 우주의 불계 생명을 열고, 외재하는 대우주의
모든 제천선신을 움직여 승리를 향해 순풍을 타고 나아가게 한다.
“이만큼 열심히 했는데…”라며 도중에 포기하고 기원을 그만두면 기원과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자칫 인간은 처음에는 강한 결의로 창제에 힘쓰지만, 중간 정도 되면 “정말 이루어질까?”라는 불신을 안고 이윽고 기원의 성취를 잊고 체념하기 쉽다. 이 “정말 이뤄질까?”
라고 생각하는 약한 마음이 그대로 기원에 반영된다. 기원은 일념의 반영인 이상, 끝까지
한번 정한 목표에 깊은 결의를 담아 계속 기원하는 것이 기원을 이루고
승리와 영광을 쟁취하는 요건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묘법의 절대적인 확신이며 용기다. 용기를 불러일으켜
무슨 일이 있어도 본존님 근본으로 창제 제일을 관철하는 속에 신심의
제호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착실히 영원한 행복 궤도를
일찍이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물바닥에 있는 돌에 불이 있는 것과 같고
백천만년 동안 어두운 곳에도 등불을 넣으면 밝아지듯이”(어서 1403쪽)라는
성훈의 한구절을 인용해 “기원한 순간 생명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인과구시(因果俱時)입니다.
생명의 오저에는 그 순간에 이미 기원은 이루어집니다” “기원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투철한 기원이라면 마침내 반드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입니다.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확신하는 것이 신심입니다”라고 말했다.
법화경의 행자에게 겉으로는 힘든것처럼 보여도 착실하게 ‘영원한 행복’의 궤도를
전진하는 것 은 틀림없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든 광선유포의 일념으로 기원하고
또 기원하며 행동을 관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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