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 사회의 신앙과 실천

21세기를 비추는 불법의 빛

by 행복철학자 2024. 6. 24.
728x90
반응형
SMALL

21세기를 비추는 불법의 빛


‘제법의 실상’에 통달한 부처의 지혜 
    


“전세계를 알고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가 있다.”

이것은 프랑스의 시인 라 폰떼느의 경구(驚句)다. 바깥 세계의 사상에 정통했다 해서

그 사람이 내면의 ‘자기 자신’을 깊이 통찰 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것은 고학력자이면서 판단력을 잃고 흉악한 범죄로 내달린 청년들이 있었던

것을 봐도 수긍된다.

 

‘지식’은 어디까지나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구사해서

플러스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그 사람의 ‘지혜’로 정해진다.

새로운 세기를 여는 열쇠, 21세기를 비추는 불법(佛法)의 빛은 ‘불법의 지혜’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불법에서 설하는 지혜를 생각한다.

 

 

‘삼지의 체’란 남묘호렌게쿄

 

‘제불지혜 심심무량’은 석존이 법화경 <방편품> 첫머리에서 한 말이다.

즉 ‘모든 부처의 지혜는 매우 깊고 또한 계량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 있는 ‘지혜’를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어의구전(御義口傳)>에서

 “이 지혜의 체(體)는 즉 일심(一心)의 삼지(三智)니라”(어서 714쪽)라는

천태대사(天台大師)의 석을 인용한다.

 

‘일심의 삼지’란 일심 속에 부처의 지혜인 ‘삼지’가 구비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삼지를 천태는 ‘마하지관’에서 “불지(佛智), 공(空)을 비추는 것, 이승(二乘)이

보는 바와 같이 되는 것을 일체지(一切智)라고 이름 짓는다. 불지, 가를 비추는 것,

보살이 보는 바와 같이 되는 것을 도종지(道種智)라고 이름 짓는다. 불지,

공가중(空假中)을 비추고, 모두 실상(實相)을 봄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이름 짓는다”라고 말했다.

 

‘일체지’는 제법(諸法)의 가운데서 평등보편의 상(相)을 관(觀)하는

‘이승(二乘)의 지혜’이고, ‘도종지’는 중생을 교화(敎化)하기 위해 도(道)의

종별(種別<차별>)을 깨닫는 ‘보살의 지혜’다.

그리고 일체종지란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통달(通達)하고 일체중생의

성불의 선근(善根)의 종(種)으로도 되는 ‘부처의 지혜’다.

이 세 가지의 지(智) 즉 삼지(三智)가 모두 갖춰진 것이 부처의 지혜다.

 

그리고 대성인은 <어의구전> 속에서 “삼지의 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서 715쪽)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라 봉창함을

지혜라고 하느니라”(어서 715쪽)라고 말씀하시고, 삼지로 나누어지는

부처의 지혜의 당체(當體)도 실은 남묘호렌게쿄 그것이고, 창제의 실천 속에

부처의 지혜가 나타난다는 것을 교시(敎示)하신다.

 

그런데 ‘지식’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좋은 지식’과 ‘나쁜 지식’의 구별은 없다.

그러나 ‘지혜’에는 ‘좋은 지혜’와 ‘나쁜 지혜’가 있다. 지혜 자체에 ‘선(善)인가 악인가’

 ‘행복인가 불행인가’ ‘존경인가 질투인가’ ‘평화인가 전쟁인가’라는 ‘방향성’을 포함한다.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다음과 같이 스피치를 했다. “‘지혜’야 말로 ‘행복’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행복의 알맹이는 ‘미(美)’ ‘이(利)’ ‘선(善)’ 이라는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지혜가 있으면 일체를 미의 방향으로 이의 방향, 선의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되기 위한 지혜’ 그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나도 스피치하고 있다.”

일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행복해 지기 위한 지혜’다.

 

그리고 부처의 최고의 지혜인 남묘호렌게쿄는 ‘행복하게 되기 위한 최고의 지혜’다.

그리고 그 ‘최고의 지혜’를 함께 나누는 우리의 행동은 인류 행복과 직결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위에 다시 행복하게 되기 위한 지혜를 얻는 실천을 SGI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지혜는 민중을 행복하게 하는 행동, 오직 그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 광선유포의 최전선에서 자기가 이야기하고 함께 기원(祈願)하고

고생한 몫만큼 ‘지혜’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우리가 행하는 학회활동이 얼마만큼 우리들 인생에 플러스 가치를 가져오는가.

20년, 30년, 40년 신심의 연륜을 쌓으면서 ‘행복의 지혜’를 체득한 여러

선배분들의 모습을 보면 의심의 여지는 없다.

 

지혜란 마음이 뛰어난 것

 

마지막으로 ‘부처의 최고 지혜’를 체득한 모습이란 어떠한 것인가. ‘법화경 방편품,

 수량품 강의’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다.

“법화경에서 지혜란 단지 머리가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깊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뛰어났습니다. 강한 마음, 넓은 마음, 깊은 마음으로 얻게 되는

인간성이고 인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상적 모습이고, 달리 말하면

‘성불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이 있으면 안심이다’ ‘저 사람과 만나면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듣도록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학회원의 모습이다.

 

창가학회(創價學會)가 지향(指向)하는 것, 그리고 신심(信心)을 바르게 실천하는

회원의 모습. 그것들 하나하나가 ‘법화경의 지혜’에 합치한 것을 알게 되는 데서

‘학회야말로 불교 정통의 단체’라고 할 수 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