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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민중에게 열린 수행
일반적으로 불교는 실천이 어려운 여러
수행법을 설합니다. 그에 비해 니치렌대성인은
모든 수행의 의의가 창제에 집약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절에서는 대성인의
어서를 바탕으로 형식에 얽매인 수행이 아닌
신심근본의 창제가 바로 성불의
직도(直道)라고 강조합니다.
니치렌대성인 문하 중에 도키조닌이라는
신도(信徒)가 있었습니다.
대성인이 도키조닌에게 보낸 편지 중에
말법의 올바른 수행에 대해 말씀하신
<사신오품초>가 있습니다.
대성인은 그 편지에서 말법의 수행은
“신(信)의 일자(一字)를 간요(肝要)로 심으셨느니라.”
(어서 339쪽) 즉 “신의 일자를 구극(究極)으로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대성인불법의 핵심은 ‘형식’이 아닙니다. ‘
마음’입니다. ‘신심’이 근본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어본존을 믿고 ‘창제’하는 수행에 모든 수행이
포함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로서 알기
쉽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이라는
이자(二字)에 육십육지방(六十六地方)의
인축재(人畜財)를 섭진(攝盡)하여 하나도
남김이 없으니”(어서 341쪽) 즉 “일본이라는
두 문자에 일본 육십육개 지방의 사람, 동물,
재보의 일체가 다 포함되어 있어 하나도 남김이 없다.”
마찬가지로 ‘남묘호렌게쿄’라는 제목에
법화경의 일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창제행이
그대로 성불의 직도가 됩니다.
형식에 사로잡힌 그 밖의 수행은 지엽(枝葉)의
수행이며 오히려 신심을 방해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제목의 깊은 뜻을 몰라도 제목의
공덕을 그대로 몸에 나타낼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마치 “소아(小兒)가 젖을 빠는데 그 맛을
몰라도 자연히 몸을 이익(利益)케 하며”(어서 341쪽)
즉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데 그 맛(성분)을
몰라도 자연히 그 몸에 이익을 얻는(성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법문을 이해하지 못해도
의심하지 않고 제목을 부르면 자연히 제목의 위대한
힘을 몸에 갖출 수 있습니다. 대성인불법은
‘민중’에게 열린 ‘민중을 위한 불법’입니다.
또 “묘호렌게쿄의 오자(五字)는 경문(經文)이
아니고 그 의(義)가 아니며 오직 일부(一部)의
의일 뿐이라.”(어서 342쪽) 즉 “묘호렌게쿄의
오자는 단순한 경문이 아니다. 그 의의도 아니다.
다만 법화경 전체의 마음이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제목은 법화경의 마음이며,
근본적으로는 대성인의 혼(魂)입니다. 따라서
그 의미를 몰라도 어본존을 믿고 제목을
부르면 대성인의 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남묘호렌게쿄라는 대성인의
생명을 용현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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