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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9-2 인간혁명은 자신과 벌이는 싸움

by 행복철학자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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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인간혁명은 자신과 벌이는 싸움

 

인간혁명은 늘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자 신심을

방해하려는 마의 작용과 벌이는 투쟁입니다.

‘불법은 승부’란 자신과 벌이는 싸움에

승리하는 일이라고 외칩니다.

 

‘불법은 승부’라는 말해 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신심은 인간의 막힘과 또 인류의 막힘과

벌이는 싸움이다. 부처와 마가 벌이는 투쟁이

신심이다. 그것이 불법은 승부라는 말이다.”

전진하면 당연히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더욱더 제목을 부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경애를 크게 열 수 있습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끊임없는 반복이 신심입니다.

 

그런 자신과 벌이는 싸움, 막힘과 벌이는 싸움,

마와 벌이는 투쟁에 이기느냐 지느냐

이것이 ‘승부’입니다.

자신과 승패를 겨루는 치열한 투쟁을 잊으면

이미 타락입니다. 유희(遊戱)입니다.

 

적당히 만족하는 안일에 빠지면 이미

패배한 모습입니다.

니치렌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저 불법이라고 함은 승부를 제일로 하고

왕법(王法)이라고 함은 상벌(賞罰)을

근본으로 했노라. 그러므로 부처를

세웅이라고 칭하며 왕을

자재(自在)라고 이름했다.”(어서 1165쪽)

 

즉 “본디 불법은 승부를 제일로 하고,

왕법(정치, 사회)은 상벌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부처를 ‘세웅’이라 칭하고 왕을

‘자재’라고 이름 붙인다.”

상벌은 순위가 있고 상대적입니다. 100점

중 10점, 60점 또 훈장의 등급, ‘더 좋다’

‘더 나쁘다’ 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승부는 절대적입니다. 승리하느냐

지느냐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부처’란 이 승부에서 ‘이긴 사람’을 말합니다.

‘세웅’이란 인간 세상(세간)에서

가장 강한 용자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불전(佛典)에서는 ‘부처의 별칭(별명)’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전승(戰勝)’ ‘승도사(勝導師)’ ‘승진(勝陣)’

‘승타(勝他)” ‘승타당(勝他幢,

당은 창<>이라는 의미로 장기에서 궁<>을

상징)’ 또 ‘건승파진<健勝破陣>’

즉 마군(魔軍)의 진영을 부수고 이기는

건자(健者)와 용자(勇者),

‘십력항마군(十力降魔軍)’ 즉 10의 힘으로 마군을

항복시키고 전멸시키는 강자를 말합니다.

 

이것이 부처입니다.

즉 마와 겨룬 승부에서 ‘이기는 리더’

(승도사)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겨야 불법이고 이겨야 신심입니다.

대성인은 마군과 벌이는 싸움에 관해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은 십군(十軍)의

싸움을 일으켜서 법화경의 행자와

생사해(生死海)의 해중(海中)에서, 동거예토

(同居穢土)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으려고 다투고 있다.

 

니치렌은 그 당사자가 되어

대병(大兵)을 일으킨 지

이십여년인데, 니치렌은 한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어서 1224쪽)

즉 “제육천 마왕이 십군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일으켜 법화경 행자의 ‘생사라는

괴로움의 바다’에서 동거예토(사바세계와

같이 육도<六道>의 범부와 사성

<四聖(성문, 연각, 보살, 부처)이 동거하는

국토>)를 ‘빼앗기지 않겠다’

 

‘빼앗겠다’ 하고 다툰다. 니치렌은 그 당사자가

되어 부처의 대군을 일으킨 지

이십여년이다. 그동안 한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마의 십군’이란 ‘번뇌의 군대’를 말한다.

《대지도론》(대정신수대장경 25권)에는

열 종류가 이렇게 씌어 있다.

(1)욕(): 오욕(五欲)에 사로잡혀

수행을 게을리 한다.

(2)우수(憂愁): 마음이 울적하고 귀찮아진다.

(3)기갈(飢渴):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린다.

 

(4)갈애(渴愛): 애욕과 집착으로 타락한다.

이성에게 갖는 애착이나 술에 집착하는 등

쾌락에 빠지는 모습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5)수면(睡眠): 게으르게 계속 잠만 자는 듯한

진지하지 못한 생활이고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혀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잠에 져서 향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요령을 피우며 사는 인생도 포함된다.

(6)포외(怖畏): 두려움에 져서 겁쟁이가 된다.

 

(7)의회(疑懷): 수행자를 부추겨 의심을

일으키고 후회를 남긴다.

(8)진에(瞋恚): 노여운 마음이 수행을 방해한다.

(9)이양허칭(利養虛稱): 명리(名利)와

헛된 명성(名聲)에 사로잡혀

성불로 가는 길에서 벗어난다.

(10)자고멸인(自高蔑人): 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깔본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역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만한 생명입니다.

또 그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이 마군에 지고

사로잡혀 적진에 넘어가고 만 자들입니다.

이 마군을 쳐부수는 ‘무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신심이라는 이검(利劍)’뿐입니다.

 

그러므로 광포의 리더는 가장 먼저 ‘신심 강성한

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보기에 아무리 우수한 리더처럼 보여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마와 벌이는

‘생명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신심이 강한지 어떤지가 진정한 강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 어서에 씌어 있는 대로 대성인은 부처와

마가 우주라는 ‘생사의 바다’

(괴로움의 바다)를 무대로 장절한 싸움을

벌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 전체가 ‘승부의 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하는 힘과 파괴하는 힘

, ‘혼란(=카오스)’을 일으키는 난기류(亂氣流),

‘연결시키는’ 자애의 힘과 ‘단절시키는’

증오의 힘, 생과 사, 빛과 어둠, 행복과 불행,

전진과 후퇴, 상승과 하강, 개방과 폐쇄,

희망과 절망, ‘살리는’ 에너지와 ‘죽이는’

충동(衝動) 등입니다.

 

즉 행복해지는

법칙을 따르느냐 반대로 어둡고 불행한

세계로 바꾸는 천마(天魔)에게 종속되고

마느냐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지는

법칙에 따라 무너지지 않는 상락(常樂)의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법자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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