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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9-3 불법은 석존의 ‘마음의 투쟁’에서 시작

by 행복철학자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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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불법은 석존의 마음의 투쟁에서 시작

 

소설 《신인간혁명》에서는 극단적인 고행(苦行)

으로는 득도(得道)할 수 없다고 안

석존이 보리수 아래서 드디어 성도(成道)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무명(無明)이라는 기심(己心)의 마를

물리치는 불법의 승부를

그린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석존은 보리수 아래서 계속 사색했다.

불전(佛傳)에 따르면 이 때, 악마가 석존을

유혹했다고 한다. 유혹한 방법은

불전에 따라 다르지만 말을 상냥하게

걸었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너는 바싹 마르고 안색도 좋지 않다.

죽음에 직면했다. 이대로 명상을 계속하면

살 가망은 천()의 하나밖에 없다∙∙∙.”

악마는 먼저 생명의 위기를 말하고 살아야

한다고 재촉한 뒤, 바라문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공덕을 많이

쌓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석존이

하는 수행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기심(己心)에서 일어난 격렬한 갈등의

드라마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석존은 미혹하여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흐트러졌다. 체력도 떨어져 쇠약한 나머지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엄습했다. 또 그렇게

혹독한 고행을 해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기에 지금 하는 노력도 결국은 소용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터이다.

 

여하튼 욕망에 대한 집착과 굶주림, 졸음,

공포, 의혹이 석존을 덮쳤다.

마()란 정각(正覺)에 대한 구도(求道)의

마음을 뇌란(惱亂)시키려는 번뇌의 작용이다.

그것은 세속적인 욕망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육체적인 굶주림이나 졸음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불안이나

공포, 의혹이 일어 마음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 그 마에 미혹되면 자신의 좌절을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정당화하는 법이다.

더구나 그것만이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해 버린다.

예를 들면 ‘이렇게 해도 깨달음 따위는 얻을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석존의 생각은 그때까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없기에 언뜻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마는 “어버이와 같은 생각을 갖느니라.”(

어서 917쪽)고 하지만 때때로

마는 자신의 나약함이나

감정을 긍정하는 상식론에 의지하는

기분을 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석존은 그것을 ‘마’라고 간파하고

생명력을 분기시켜

잡념을 떨쳐버리고 소리 높이 외쳤다.

 

“악마여, 겁쟁이는 너에게 패배할지 모르지만

용자(勇者)는 승리한다. 나는 싸우겠다.

패배하고 사느니 싸우다 죽는 편이 낫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주위는 어두운 정적에 감싸인 채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맑은 빛을 지상에 던지고 있었다.

마를 극복한 석존의 마음은 상쾌했다. 정신은

맑게 갠 푸른 하늘과 같이

한 점의 흐림도 없었다. 석존은 생명이

삼세(三世) 영원함을 깨달았다.

 

그때, 태어난 이래 마음속 깊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모든 불안이나 미혹이 사라졌다.

자기라는 존재의, 미동조차 하지 않는 깊은

뿌리에 간신히 도달한 것이다.

석존은 무명의 어둠이 사라지고 지혜의 광

명이 자신의 생명을 비추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바라보듯 경지를 열었다.

 

법락(法樂)을 체험한 석존은 잠시 후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것은 새로운 고뇌였다.

그는 나무 그늘에 앉아 며칠이고 생각했다.

‘이 법을 설해야 하는지, 설하지 말아야 하는지∙∙∙.’

석존이 깨달은 법은 지금까지 아무도 들은

적이 없고 설한 적도 없는 무상(無上)의

대법(大法)이다. 광채로 가득 찬 석존의

생명세계와 현실세계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병들고 늙고 죽는 일을 두려워하고

욕망에 몸을 불태워 서로 다투고 고뇌한다.

그것은 ‘생명의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해도

누구 한 사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석존은 고독을 느꼈다. 그것은 미문(未聞)의

법을 얻은 자만이 아는

‘깨달은 자의 고독’이었다.

 

어느 불전에 의하면 이때도 악마가 나타나

석존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것은 법을 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단념시키려는 기심의 마와 벌인

싸움이라 해석할 수 있다.

 

석존은 포교를 추진하는 일에 왠지 모르게

솟구치는 망설임과 당혹감을 억제할 수 없었다.

석존은 괴로워하며 망설였다. 마는 불타가 된

석존에게도 마음의 틈을 이용해

계속 나타나서 괴롭혔다.

 

‘부처’라 해도 결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뇌도 있고 괴로움도 있다.

병에도 걸린다. 그리고 마의 유혹도 있다.

그러므로 ‘부처’란 이런 마와

끊임없이 싸우고 계속 행동하는 용자를 말한다.

 

반대로 아무리 경애를 쌓았다고 해도

정진을 잊으면 한 순간에 신앙이 파괴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전에는 망설이는 석존 앞에 범천(梵天)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널리 법()을 설하도록

간청했다고 씌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수행하려는 석존의 물러서서

않는 의지의 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석존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나는 가겠다! 가르침을 구하는 자는 들을

것이다.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방황하는

중생들 속으로 들어가자!’

마음을 정하자 석존은 생명에 새로운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위대한 사자(獅子)

한 사람이 인류를 위해 일어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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