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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품 제2 강의

방편품 강의 4

by 행복철학자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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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품 강의 4

 

 

[본문]

 所以者何       如來方便          知見波羅密            皆已具足

쇼 이 샤 가   뇨 라이 호 벤   지 켄 하 라 미쓰    가이 이 구 소쿠   

(소이자하      여래방편         지견파라밀             개이구족)

 

 소이(所以)는 무엇인가. 여래는 방편, 지견파라밀, 모두 이미 구족했다.

 

 [통해]

(부처는 여러 방편을 사용하여 중생을 인도하고 집착을 떨어버리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부처는 사람들을 가르쳐 이끌기 위한 방편과 지혜를 모두 이미 구족했기 때문이다.

 

 [어역]

 여래(如來) : 산스크리트어인 타타아가타(tatha-gata)를 번역한 말. 부처를 말한다. 깨달음의 완성에 도달한 사람. 여래란 '진여(眞如: 깨달음)에서 온 사람으로, 중생을 가르쳐 이끈다'는 뜻.

 지견파라밀(知見波羅密) : '지견(知見)'은 지혜에 의한 통찰력, 깨달음. 지혜파라밀을 말한다. 대승의 보살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여섯가지 수행인 육파라밀(六波羅密)) 가운데 제6으로 들고 있다. 일체법(一切法)에 통달하고, 사견(邪見)을 떨쳐버리고 진실을 바르게 간파하는 지혜를 얻은 것.

 

 [강의]

 부처의 광대한 지혜를 찬탄하는 설법이 계속된다.

 지금까지 부처가 과거에 얼마나 무량한 수행을 해왔느냐는 측면에서 부처의 지혜를 찬탄했다. 여기부터는 그 수행으로 얻은 '민중을 이끄는 지혜의 힘' 부처의 경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앞부분의 내용을 받아서, 부처가 여러 인연(因緣: 내력)과 비유로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집착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방편과 지견파라밀'은 '방편과 지견(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바라밀'의 뜻은 '도달한다, 완성하다'이다.

 또 "모두 이미 구족했다"의 '구족'이란 갖추는 것을 말한다. 여러가지 수행을 완성시켜고 심심(甚深)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사람들을 이끄는 절묘한 수단이 있고, 지혜를 갖추었다. 그러므로 적확하게 그 사람에 응한 지도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

 이 경문 다음에는 그 사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부처는 "무량 * 무애(無涯), 역(力), 무소외(無所畏)"라는 지혜의 힘이 있다고 설한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에 말하겠지만, 이것은 부처가 민중(民衆)을 행복으로 이끄는 '지혜'의 구체적인 작용이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불법은 '지혜'의 종교이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대인의 불행 중 하나는 지식과 지혜를 혼동하는 일이다"

 "지식이 곧 지혜는 아니다. 지식은 지혜를 여는 문이지만, 지식 자체가 결코 지혜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워도 그것이 그대로 사업의 번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훌륭하게 성공한 실업가도 많다.

 또 육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육아교육을 훌륭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보면, 어린이의 성장은 천차만별이다. 책에 쓰여 있는 것과 다르다며 육아 노이로제에 걸린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다.

 물론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알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가.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지식이야말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렇지만 '아는 것'만으로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행복을 창조할 수는 없다. '지식이 늘었다'와 '행복이 늘었다.'는 같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지식을 활용하는 근본적 지혜가 중요하다.

 이것은 하나의 예이지만, 교육론에서는 자주 '어린이와 같은 눈높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체험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가 백화점 같은 곳에서 막무가내로 조르면서 바닥에 주저 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때는 아무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꾸짖어도 소용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도 함께 앉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갸웃거리며 울음을 그친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타이르면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나 통용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마음을 통하려는 부모의 마음에서 나온, 그 사람 나름대로의 지혜라는 점은 틀림없다. '같은 눈높이에서'라는 지식이 훌륭하게 실천적인 지혜로 활용된 예이다.

 어쨌든 '무엇을 위한 지식인가'를 항상 스스로 묻지 않으면 지식을 위한 지식이 되고 만다. 예를 들면, 교사에게는 교사의 사명이 있다. 아이들의 인격, 지혜를 연마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그렇게 하기 위한 교육자이다. 그를 위한 교육자로서의 지식이다.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지혜가 없으면 참된 교육자가 아니다.

 또 정치가는 공복(公僕)으로서 민중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몸을 바쳐 중지(衆智)를 모아 실행할 책무가 있다. 사회를 향상시키는 지혜도 행동력도 없다면 참된 정치가가 아니다. 학자도 학문을 통해 인류에게 공헌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한 본래의 사명 - '무엇을 위해'를 실현했느냐 못했느냐를 항상 반성해야 한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나는 이런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위치에 있고 정보를 갖고 있다' '내 지식은 대단하다' 따위로 오만불손하다면 근본인 '마음'이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교육도 과학도 정치도 경제도 모든 인류의 활동은 전인류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가 출현한 이유는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도 전 인류를 영원히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불법과 다른 분야는 모순되지 않는다. 불법의 지혜를 근저로 해야 비로서 다른 모든 지식도 살아난다.

 방편품은,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불지견(佛知見: 부처의 지혜)을 '열게 하고', 불지견을 '나타내고' 불지견을 '깨닫게 하고' 불지견의 길로 '들어가게'하기 위함"이라고 설한다. 이 '개(開) * 시(示) * 오(悟) * 입(入)'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부처가 출현하는 근본목적)'이라고 한다.

 부처는, 모두가 자신의 지혜를 개발하는 일이 행복을 위한 길임을 가르치고 싶었다. 부처의 지혜도 '무엇을 위해'라는 강한 목적관, 사명감에서 나왔다.

 

불법은 최고의 생활법

 불법은 최고의 생활법(生活法)이다. 도다 선생님의 질문회는 참으로 서민을 구제하는 '지혜의 도량(道場)'이었다. 병이나 실직 때문에 진 빚이나 부부싸움까지 온갖 인생의 고뇌에 신심의 대확신으로 거침없이 핵심을 찌르며 지도하셨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은 참가자는 순식간에 생기를 되찾고, 용기와 희망에 불타 일어섰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걷는 모습, 어깨에 힘을 주는 정도, 그리고 목소리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문 여는 모습 하나로 그 사람의 괴로움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예리하고 깊이 사람들의 생명상태를 꿰뚫어 보고, 괴로움에 응해서 법을 설하는 것이 불법(佛法) 지도자의 힘이다.

 때에 응해서, 기(機)에 응헤서 법을 적확하게 설하기란 매우 어렵다. 저 사리불(舍利弗)도 법을 잘못 설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어서 438쪽, 취의)

 어느 날, 사리불이 대장장이와 세탁업자에게 각각 법을 설했는데, 두사람 모두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不信)을 일으키고 말았다.

 본래라면 사리불은 대장장이에게는 수식관(數息觀: 호흡을 조절하는 수행)을, 세탁업자에게는 부정관(不淨觀: 육체의 부정을 깨닫는 수행)을 가르쳐야 했다.

 왜냐하면 대장장이는 풀무로 바람을 보내고 쇠망치로 뜨거운 철을 계속 두드리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수식관을 설하면 즉시 가르침을 이해하고 불도수행을 심화할 수 있다.

 그리고 세탁업자는 더러운 옷을 빨기 때문에 부정관을 설하면 즉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리불은 두 사람에게 반대의 가르침을 설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수행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상대방을 괴롭게 만들었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응하는 가르침을 설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대성인은 온갖 기근(機根)의 사람에게 열린 실천법을 확립했다. "만기(萬機)를 위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권함"(어서 875쪽)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묘법을 말하는 공덕은 절대적이다.

 경험이 풍부한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 사람의 체질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다. 의학적인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을 충분히 살리는 지혜를 갖고 있다. 진정한 진식은 지혜와 일체(一體)이다.

 "당신은 맹장염(盲腸炎)입니다."라고 말만 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맹장염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며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부처는 만인을 행복하게 하는 '생명의 명의(名醫)'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밝혀서, 발랄하게 살아가는 상락(常樂)의 길을 가르친다. 그것이 부처의 지혜이다.

 '무자비'가 당연한 듯한 이 시대에 학회의 동지만큼 많은 사람을 소생(蘇生)시키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만큼 부모 같은 심정에서 타인을 위해 기원하고 행동하고 있는 민중단체는 없다. 세간에는 저명인이나 지식인이 많지만, 나는 여러분이야말로 한없이 존귀하고, 지혜로운 '명의'이며 '간호사'라고 찬탄한다.

 

신심에 갖추어진 지혜파라밀

 사리불을 비롯해 이 방편품의 설법을 듣던 회좌(會座)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런 완전한 불지(佛智)는 나와 연(緣)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훌륭한 불지라면, 나도 그것을 배우고 싶다. 익히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방편품은, 사리불 등이 "구족(具足)의 도(道)를 듣고자 하나이다."(법화경 115쪽)라고 원했다고 설했다. '개이구족(皆已具足)'이라는 부처의 경애에 이르는 '도(道)'를 듣고 싶다는 구도심을 일으켰다. '나는 이제 이것으로 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 높게' '더 깊게'하며 생명이 약동했다. 대성인은 이 '구족의 도'에 대해 '개목초(開目抄)'에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이것이니라." (어서 209쪽)라고 말씀하셨다.

 이전권교(爾前權敎)는, 이 부처의 경애를 얻기 위한 보살의 수행으로서 '육파라밀'을 설했다.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의 여섯가지 수행으로, 부처의 경애에 다가가려는 실천이다.<주8> 이 수행은 역겁수행(歷劫修行: 무량겁을 거치는 수행)이다.

 그러나 법화경의 개경(開經: 서설<序說>)인 무량의경(無量義經)은, 법화경의 공덕으로서 "비록 육파라밀을 수행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육파라밀은 자연이 앞에 나타나며"(법화경 54쪽)라고 설했다. 다시 말해 육바라밀은 자연히 갖추어진다.

 

법화경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제17에는, 법화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고 씌어 있다. 그 공덕은 팔십만억 나유타겁이나 되는 기나긴 세월동안 '지혜바라밀(반야파라밀)을 제외한 오바라밀"을 수행하는 공덕보다도, 백천만억배나 크다고 되어 있다. (법화경 502쪽, 취의)

 '지혜바라밀은 다른 오바라밀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바라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파라밀은 이 지혜파라밀을 얻기 위한 수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법은 어디까지나 '지혜'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말법에서 초심(初心)의 행자(行者)는 오바라밀의 수행이 필요 없다."(어서 340쪽, 취의)고 말씀하셨다.

 '승려에 대한 보시(布施)'와 계율 등의 오바라밀이 열심히 설해지던 당시, 이 대성인의 수행관(修行觀)은 일대(一大) 종교혁명이었다.

 게다가 대성인의 불법은 '이신대혜(以信代慧: 신심으로써 지혜를 대신한다)'라고 설한다. 올바른 '신심'이 즉 '지혜'가 된다. 우리 말법의 범부는 어본존을 믿음으로써 이 지혜바라밀을 비롯한 '육파라밀'을 모두 수행한 것과 똑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어본존을 믿고 학회와 함께 광선유포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 '육파라밀'의 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광포활동에 힘쓰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지혜로운 인생'이 된다.

 많은 선배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중에 되돌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심하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누구보다도 현명한 '신심즉생활' '행동즉건강'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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