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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서민의 고뇌에 다가가다
1951년 5월 말, 도다 선생님이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고문을 맡고, 스물세 살인 내가 젊은
영업부장으로서 분투하던
회사 사무실이 이치가야역 근처로 이전했습니다.
물길이 흐르는 곳에 있는 3층 건물
이치가야빌딩의 한 방입니다.
이치가야빌딩에는 ‘세이쿄신문’ 편집실도 생겼습니다.
게다가 당시 학회본부는 니시간다에 있었는데
본부 ‘분실(分室)’도
이 빌딩 안으로 이전했습니다.
방은 둘 다 이층이었습니다. 분실은 고작
4, 5평 크기였습니다.
방 끝쪽 창가에 도다 선생님이
앉는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앞에 팔각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여기서 날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찾아오는 회원을
지도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이치가야빌딩 전체 안내를 담당하던
여성은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정말 놀랐다고 합니다.
‘창가학회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며
안내원 앞에 나타난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보기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괴로움을 떠안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안내원이 더 놀란 사실은 그 똑같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
갈 때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웃음을 띠고 생기발랄하게 돌아가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병원 대기실보다도 검소한 방이었지만
이 분실은 그야말로
서민에게 ‘희망의 항구’가 되고
‘소생’의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우인의 멋진 격려만큼 / 괴로움을
덜어주는 약은 없다.”는
고대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명언입니다.
우리 스승은 찾아온 벗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어쩐 일인가?’
그 따뜻한 목소리와 안경 속에서 빛나는
자애로운 눈동자에 동지는 늘
진심으로 안도하고
솔직하게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괴로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경제고, 어려움에 처한 일, 병, 가정불화,
자식 문제, 인간관계 문제,
자신의 진로나 숙명……
죽느냐 사느냐 하는 궁지에 몰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필사적인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일처럼
동고하며 벗의 생명을 뒤흔들어
위대한 신력, 행력을 불러일으키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괜찮다. 이 신심을 해서 행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사자왕의 마음으로 나아가라.
영예로운 창가학회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럽게 꿋꿋이 살아라.”
한번 한번의 지도가 눈앞의 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진검승부였습니다.
거기에는 “일체중생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니치렌 일인(一人)의
고(苦)가 되느니라.”(어서 758쪽)는 대자대비의
말씀이 울려 퍼졌습니다. 분실로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간부이면서 이런 일로 괴로워해서’
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한 괴로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크게 포용하셨습니다.
반대로 허세를 부리고 힘들어하는 동지를 깔보는
듯한 사람에게는 열화와 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괴로워해 봐야 남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괴로워해 봐야 강해집니다. 선생님
자신도 자식을 잃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도 몇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법화경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비로소
학회의 회장이 되었다고 술회하셨습니다.
유명한 문호 위고가 ‘큰 괴로움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을 크게 만든다.’고
갈파한 대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와 희망을
보내는 철저한 격려가 중요합니다.
이 지도력은 제멋대로 해서는 붙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어서근본’입니다.
그리고 광선유포의 조직 속에서 행학에
힘쓰고 연마하는 이외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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