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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학

불이(不二) 사상

by 행복철학자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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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不二) 사상  

 

 

고뇌를 뚫고 환희에 이르라! 당신 그대로가 존귀


 자신 상실의 불안 시대

매일 뉴스를 듣고 보고 있으려면, 한 세기가 바뀌었는데도 격동하는

거친 파도 가운데서, 사회전체가 큰 불안에 덮여 혼돈된 어둠 속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난 날 일본의 버스 잭 소년은 학교에서 소외당하고,

 현실사회에서도 있을 장소를 빼앗겨, 인터넷의 가상현실(假想現實)의

세계로 도피해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존재의의(存在意義)를 인정받지 못해,

오히려 부정하게 되어 버렸다.

그런 그가 자기의 존재를 사회에 나타내 보일 수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비참하게도 자기보다도 약한 고령자(高齡者)의 생명을 빼앗고,

소녀를 방패로 한 버스 잭이라는 흉악한 범죄행위로 된 것이다.

저지른 죄는 인간으로서 확실히 허용되기 곤란한 것이고,

또 그가 저지른 짓은 불법(佛法)의 근본정신인 생명의 존엄이라는

것과도 위배된다.

 

그런데 거기에는 자신이 살고 있다는 증거

존재의의를 타인의 시선(視線)에 의해서라도 확인해 보고 싶다는

목마름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것에 의한 마음을 해결할 길이 없는

노여움 같은 것이 있다.

또 앞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 어찌됐건 개의치 않은

행동으로 치달아 버리고 만, 너무나도 슬픈 어리석음이다

 

또 자기로 인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사람의 존귀한 생명,

인생까지도 뭉개버리고 만 제멋대로의 방자(放恣)가 있다.

그러나 그 슬픔만큼이나 목마름, 어리석음, 제멋대로의 방자는

그 소년 한사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기가 살고있는 의미에 목마름을 느끼고,

그 의미를 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법에서는 탐(貪 : 지나치게 욕심을 부림, 탐욕), 진(瞋 : 노여움,

분노, 진에), 치(痴 : 어리석음, 우치)의 삼독(三毒)을 비롯해서,

만(慢 : 교만, 뽐냄, 거만)과 의(疑 : 바른 것을 믿지 못하는 의심,

 의문) 등의 번뇌(煩惱 : 생명에 갖추어지는 근원의 미혹)에 인간은

상 분동되고, 고뇌에 허덕이게 된다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은 이의 해결을 탐구(探究)해 왔던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역사를 만들라 아무리 불안으로부터 도망쳐보려고

노력해도,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소년세대에게,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희망대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본래, 누구나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구하고 있다.

자기가 지니고 있는 힘을 텅 비우게 되기까지 쏟아내며 살고 싶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그러한 사업만 찾는다면 나는

목숨걸고 하겠는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또 지난 청년부 간부회에서 젊은 후계의 벗에게 이렇게 말했다.

청년이라면 역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전 일본이  어어`라고 소리치며

놀랄 만큼의 대투쟁을 청년부가 해내어서 보여주었으면 한다.

 

생명의 오저(奧底)에는 무한한 에너지가 가득히 갖추어져 있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어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살려갈 것인가. 이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자신과 사회의 파괴로 향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탈명자(奪命者)`  탈공덕자(奪功德者 : 사람들의 삶의 힘,

행복을 빼앗는 자)이고, 마(魔)`의 작용으로 된다.

 

그러나 동일한 무한의 에너지가, 자신과 사회에 행복을 쌓아올리는

것으로 향하면, 그것은 바로 온갖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부처(佛)`의 작용으로 된다.

 

나타난 면을 보면 선(善)과 악(惡)이라는 전혀 용납되지

않는 양극(兩極)이다. 그러나 그 오저는 나누기가 어렵고,

일체(一體)다. 악을 지워버리기 위해 그 기반(基盤)을

소멸시키면, 동시에 선을 받치고 있는 기반도 허물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오히려 악으로 향하는 방향을 전환해서, 선으로 향하게

한다면 그 모두가 싱싱하게 되살아나게 된다.

이 진실을 놓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면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지금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凝視)할 수가 있고,

고뇌로부터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더라도  당신은 당신 그대로가 존귀하다`라고 인정하고,

지금부터, 이제부터`라고 격려하고 강하게, 현명하게,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자`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不二의 妙法은 소생의 열쇠

불법에서는 서로 용납되지 않는 둘이면서도 근원(根源)에서

일체(一體)를  이이불이(二而不二 :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줄여서 불이(不二)`라고 한다.

 

불교 특히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이 점을 항상 응시하며

깊이 탐구해 왔다. 그리고 아무리 사악(邪惡)에 물든 존재라

할지라도 쓸데없는 것이라고 잘라버리는 일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만인(萬人)을 구제해서 살려가려고 한다.

나아가서는 강하고 억센 생명력을 열어, 구제되는 쪽으로부터

구제하는 쪽으로 높여가려 하고 있다.

 

그 정화(精華 : 정수가 될만한 뛰어난 부분)가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생명력이 넘치는 경애(境涯)가 갖추어져 있는데, 그것을 열고,

 나타내고, 고뇌에 허덕이는 경우를 두드려 깨고,

대환희(大歡喜)에 이르는 것을 밝힌 것이 바로 법화경(法華經)이다.

 

묘법(妙法)은  구족(具足 : 빠짐없이 고루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열다(開)  소생(蘇生)`이라는 세 가지 의의를 갖추고 있다

나아가 법화경은 고뇌(苦惱)의 어둠에 덮여 있는 사람들 속에 있으며,

 그것이 희망의 태양으로 되어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 있으면서

그것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게 꽃피는 안심(安心)의

연화(蓮華)로 되는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을 설한다.

 

혼미한 시대에서의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자각과 긍지에

살 것을 촉구하고 있다.

묘법은 고뇌에 눌려 그 밑에 깔려 있는 자신에게 어떻게든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주어 1백80도 전환해 행복의 길을 걷게 하는

소생의 열쇠다.

 

묘락대사의 十不二門

묘법이 갖는 특징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불이(不二)라는 관점에서

 10가지로 나누어서 논(論)하고 있다.

이것을  십불이문(十不二門)`이라고 한다.

십(十)의 불이(不二)란 다음과 같다.

 

① 색심불이(色心不二) : 물질적 육체와 정신, 마음(心)이 일체불이

   (一體不二)라는 것.

 

② 내외불이(內外不二) : 자신의 내면의 마음과 그것에 의해 파악되는

    외계(外界)의 사물사상(事物事象)이 일체불이라는 것.

 

③ 수성불이(修性不二) : 생명(生命)에 본성(本性)으로서 갖추어지는

    것과 불도수행(佛道修行)으로 얻어지는 특성은 일체불이라는 것.

 

④ 인과불이(因果不二) : 아직은 열려(開), 나타내지(顯) 않아,

    인(因)의 단계에 있는 중생의 불성(佛性)과 이미 과(果)로

    체현(體現)되어 있는 부처의 불성이 일체불이라는 것.

 

⑤ 염정불이(染淨不二) : 번뇌(煩惱)에 물들어 있는 중생의 생명과,

    청정(淸淨)한 깨달음에 감싸여 있는 부처의 생명이

    일체불이라는 것.

 

⑥ 의정불이(依正不二) : 인과(因果)의 이법(理法)에 입각해서

    과보(果報)를 바르게 받은 주체자(主體者 - 정보 正報)와

    그 주체자가 향수(享受 : 복을 받아 누림)하는 환경

    (의보<依報>)이 일체불이라는 것.

 

⑦ 자타불이(自他不二) : 사람들의 고뇌에 응해서 가는 부처(佛)와

    그 출현(出現)을 감득(感得)하는 중생이 일체불이라는 것.

 

⑧ 삼업불이(三業不二) : 신체적인 행동(신업<身業>)과 발언(發言

  <구업(口業)) 그리고 사고(思考), 감정(感情) 등의 정신적인

    영위(營爲<의업(意業)>), 이 삼업(三業)은 나누기 어렵

    일체라는 것.

 

⑨ 권실불이(權實不二) : 부처가 중생을 진실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임시로 설한 가르침(권<權>)과 부처가 깨달은

    진실이 일체불이라는 것.

 

⑩ 수윤불이(受潤不二) : 중생은 인연에 의해 가지가지의 경애의

    삶을 받는 것인데 그 실은 본성으로는 부처와 일체불이기 때문에

   부처가 살고 있는 경애인 적광토(寂光土)에 태어나서 같은 이익에

   젖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다른 경애의 삶과 불계(佛界)의 경애와는

   일체불이라는 것.

 

이 각기의 것이 법화경의 교설(敎說)에 입각해서 세워진 것인데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바로

알기는 어렵다.그러나 그 깊은 사색(思索)은 우리들의 생활과

인생에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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