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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
오늘도 어서를 펼쳐 어서를 배독하고 공부한다.
그러면 어본불 니치렌 대성인과 늘 인생을 함께 걸으면서 투쟁할 수 있다.
대성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 자녀들을 키운 난조 도키 미쓰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의
가슴속에 있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함을 범부라 하며
이것을 깨닫게 함은 법화경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을 수지하여
받드는 자는 지옥즉적광(地獄卽寂光)이라고 깨닫게 되옵니다.”(어서 1504쪽)
가장 심원한 생명철리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한 성훈이다. 고마운 불법이다.
비록 아무리 지옥 같은 괴로운 처지에 놓이더라도 자기 가슴에 부처의
생명을 엄연히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있는 이곳에서 묘법(妙法)을 끝까지 불러
적광(寂光)의 도읍을 단호히 구축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누구나 자타(自他) 함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열 수 있다.
그러기 위한 신심이다. 그러기 위한 교학이다.
대성인은 “수리반특은 삼개년(三箇年)에 십사자(十四字)를 암송하지 못했지만
부처가 되었으며, 제바(提婆) 육만장(六萬藏)을 암송했어도
무간(無間)에 떨어졌는데”(어서 1472쪽)라고 준엄하게 경고하셨다.
우둔하기로 유명한 수리반특은 제자의 길을 관철해 성불하고,
방대한 불경(佛經)을 아는 제바달다는 부처를 배반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요컨대 교학을 잘 안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잘 알고만 있다면 세간의
지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학을 잘 안다는 말과 신심이 있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교학을 잘 안다고 뽐내면서 퇴전하거나 반역한
어리석은 증상만이 나오지 않았는가.
우리 인생의 근본목적은 일생성불이자 광선유포다. 그러려면
‘법화경의 벙법’으로, 오로지 신심 하나로 노도 속에서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
위대한 신심의 행자, 신행의 용자로 성장하기 위한 교학이다.
이것을 착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도다 선생님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교학’과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도다 선생님과 나는 불이(不二)의
사제(師弟)로서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으로 싸웠다.
그래서 학회는 승리했다. 실천하면서 교학을 배운 학회원이 당당히 승리했다.
어서에는 무한한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미래가 있다. 어서를 읽으면
인생을 승리 하는 지혜가 솟아나고 확신이 깊어지고
싸우겠다는 마음이 불타오른다.
오직 어서를 몸으로 읽어야만 어떠한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이검(利劍)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설마가 실현’이 된 오사카투쟁을 시작하기 앞서 우리가 배독한
첫번째 어서는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 십나찰(十羅刹) 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하게 말하느니라.”(이서 1132쪽) 하는 어서다.
모두 이 어서를 생명에 깊이 새기고 동요하는 시대에 확신에 찬 기원
강성한 신심으로 출발했다.
일을 비롯해 경제고로 괴로워하는 벗과는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 하는
성훈을 배독했다. 지금은 생활이 겨울과 같을지라도 성실하게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봄과 같은 미래가 끝없이 열린다고 격려했다.
그렇듯 개개인의 상황이나 행동에 맞는 어서를 배독해 실천교학의
중요성을 전했다. 불타오르는 구도심과 싸우겠다는
사제의 교학이 승리를 열었다.
1956년에 실시한 교학시험도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었다.
행복해지고 승리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일기당천의 투사로
단련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대성인은 법화경이 문자에 관해 “육안(肉眼)인 자는 문자라고 보며
이승(二乘)은 허공이라고 보며, 보살은 무량의 법문(法門)이라고 본다.
부처는 일일(一一)의 문자를 금색의 석존이라고 보실 것이니
즉지불신(卽持佛身)이란 이것이니라.”(어서 1025쪽) 하고 가르치셨다.
같은 성훈이라도 배독하는 경애와 일념의 작용에 따라 깊이가 달라진다.
어서 근본으로 싸우자! 그렇게 정하고 끝까지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힘이 용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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