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기쉬운 교학

행학의 이도

by 행복철학자 2024. 6. 17.
728x90
반응형
SMALL

행학의 이도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이 지침으로 삼아 늘 읽으신 어서가 있다.

나는 이 어서를 학회의 으뜸가는 보물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 어서에 유독

진하게 빨간 선을 그어 놓고 이중으로 동그라미를 친 구절이 있다.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어서 1361)

 

마키구치 선생님은 이 <제법실상초>에서 설한 대로 행학의 이도에 힘쓰셨다.

 분연히 다투어 일어나는 삼장사마를 온몸으로 받으시고, 법난(法難)

와중에 감옥에서도 어서를 신독하셨다.

 

군부 권력의 압박이 두려워 비겁하게 어서를 삭제한 종문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마키구치 선생님은 가혹한 취조에도 입정안국의 대정신을 엄연히 호소해

교도관에게까지 성실하게 불법대화를 하셨다. 또 감옥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불법을 근간으로 세계의 대철학을 공부하셨다.

 

이것이 전 세계의 새로운 빛이 되어 전진하는 창가학회의 창립자가 연

 행학의 이도. 여기에 불법의 진수가 되는 행동과 인간의 궁극적인

실상이 밝혀져 있다.

 

“행학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어서 1361) ‘신심이 깊어지면

 행학도 전진한다. ‘행학 이 전진하면 신심도 깊어진다.

 

이 인과(因果)의 연동 속에서만이 악을 멸하고 선을 낳는 공덕이 솟아난다.

행복이 결정된다. 영원한 복원이 쌓인다.

 

행학의 이도가 없으면 비행기가 방위도, 고도도, 목적지도 모른 채

연료도 없이 비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항로를 이탈하여 결국

 속도를 잃을 뿐이다. 난기류라도 만나면 바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행학을 관철하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존귀한 승리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자 영원히 물러서지 않고 승리하는 사람이다.

인기 따위는 공허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행동이 바로

충실한 인간의 실상이다.

 

우리 창가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악구매리를 당해도 용감하게 끈질기게

묘법이라는 궁극적인 행복의 법칙을 한 사람 또 한 사람과 꿋꿋이 대화했다.

이보다 성스럽고 늠름한 모습이 어디에 있겠는가.

 

끔찍한 전쟁 때문에 학교도 다니지 못한 초창기 부인부가

어느 대학 교수를 멋지게 절복했다. 그 보고를 들으신 도다 조세이 선생님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칭찬하시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퇴전하고 반역한 교활한 무리의 공통점은 착실하고 진지한 행학의 이도

게을리 했다는 사실이다. 만심이다. 오만이다. 허세다.

 

행학의 실천을 멈추면 절대적 행복으로 향하는 생명도 정체한다.

그 정체 속에서 반드시 증상만과 타락 그리고 원질이 생긴다.

 

도다 선생님은 행학의 실천이 없는 간부는 회원을 혼란하게 만들뿐이다.”

하고 참으로 엄하게 훈계하셨다.

 

도다대학 강의에는 만반에 걸친 학문과 함께 교학연찬도 포함되어 있었다.

 ()<1> 중서인 <당체의초>를 깊이 있고 예리하게 배웠다.

 

그야말로 검호(劍豪)의 수행과 같이 엄격한 단련이었다.

 

강의를 마칠 때 선생님은 수료증을 주셨다.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였다

.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최고로 자랑스러운 영지(英知)

기별(記別)로써 보은하겠다는 서원을 담아 삼가 받았다.

 

이 일념이 오늘날 세계에서 200(당시)에 달하는 명예학술칭호로 결실을

이루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과의 미묘한 연화(蓮華)’

법을 꿋꿋이 행한 사제의 실증이기 때문이다.(2017 12월 현재,

이케다 선생님이 받은 명예학술칭호는 374개에 달한다.)

 

내가 존경하는 토인비 박사는 비록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반드시

매일 아침 스스로 행동을 시작할 것 그리고 반드시 오늘 하루 책 한쪽을

펼칠 것을 꼭 지켜야 할 일과로 정하셨다. 한 줄이라도 좋다. 어서를 읽어야 한다.

 

일문일구라도 좋다. 불법을 말해야 한다.

 

을 세우고 소리를 내어 을 움직이면 새로운 생명이 대우주를 운행하는

 리듬과 합치하여 회전하기 시작한다.

 

영원한 스승 대성인의 불법을 넓히고, 인생의 스승 도다 선생님께 한 서원을

완수하기 위해 나는 단호히 행학의 이도에 힘썼다. 아니 그 결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행학의 이도를 떠나 빚나는

사제의 길은 없기 때문이다.

 

 

728x90
반응형
LIST

'알기쉬운 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심으로 파고드는 교학  (1) 2024.06.17
창가 삼대(三代)의 사제와 어서  (1) 2024.06.17
사제(四諦)  (0) 2024.06.17
법중심 어서중심  (0) 2024.06.17
교육의 중요성  (1) 2024.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