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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학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by 행복철학자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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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

 

스스로 뛰어들어

탁한 사회를 변혁 아름다운 꽃이 피는 '지용'의

실천 우리들 SGI한국불교회의 회원은 지용의

보살의 권속이라고 자각하여 그 사명감 책임감에

입각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지용의

보살의 자세, 특질에 대해 그 일단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법화경의 종지용출품에 "불염세간법(不染世間法)

여연화재수(如蓮華在水)"라는 일구(一句)가 있습니다.

쉽게 풀이해 보면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음이 마치

연화가 물에 있음과 같다"라고 됩니다.

이것은 지용의 보살의 청정한 모습을 비유하여

말한 것입니다.


연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청정한 것입니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깨끗한 곳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물 속에서 핀다는 것입니다.


탁한 진흙탕물에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피는 연화 

지용의 보살의 특질 하나를 훌륭하게 부각시킨

비유입니다만, 여기에는 사회에 대해, 현실에 대해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 지용의 보살의 책임 있는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진흙탕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더러움으로 꽉 찬 현실사회를 말합니다.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이 강하게

분출하고, 불신이나 에고이즘이 꽉 찬

사회인 것입니다. 

 

지용의 보살은 이 현실의 탁한 사회 속에 늠름하게

사명감의 청정한 꽃을 피워 나가는 것입니다.


세간의 오탁(汚濁)을 도피한 곳에 깨달음을 구한 것이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이었습니다.

그들 이승(二乘)은 자기의 깨달음과 수행에만 집착하여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지용의 보살은 '깊은 산림(山林)'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는서민 속에, 병든 현실사회 속에 스스로 뛰어

들어가서 민중과 함께 나가는 사람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 모습이 '여연화재수'의 재수(在水)인 것입니다.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민중을 내려다보는

오만불손함과도, 스스로의 손을 더럽히는 것을

피하는 자세와도 지용의 보살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는 연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재수'  세간의 진흙탕 속에 그대로

매몰해 버리는 것도 물론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의 거센 파도에 부딪쳐

'흙탕물'에 친숙해져 '흙탕물'을 마시기만 할 뿐,

기품이 높은 마음과 이상(理想)에 살아가는 정열과

사회변혁의 일념을 잊어버리고 사회의 탁한 물에

젖어 잠겨 버린 사람이 많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연화가 '재수(在水:흙탕물에 있다)'하고 있으면서도

'출수(出水:흙탕물에서 나온다)'하여

'화개(華開:꽃을 피운다)'의 모습을 취하고 있듯이,

사회의 흙탕물을 넘어서 나오는 자세도 있어야만

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개'는

바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출수'의 노력과 도전을 잊어버리고 그 이념을 놓쳐

버리며 '세간의 법에 물들어'버리는 사람에게

경종(警鐘)을 강하게 울리는 책임이 지용의

보살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재수'이면서 '출수'이다   

즉 사회의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이에

매몰되지 않고 진흙탕을 나와 참된

인간성을 빛내면서 평화와 번영, 창조의 사회를

구축해 가는 것이 지용의 보살인 것입니다.


'출수'란 현실의 '흙탕물'을 끝까지 지켜보며,

무시(無視)하지 않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또한 적극적인 변혁의 자세에 서는 것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명을 자각한 과감한

변혁의 행위를 말합니다.


아무런 자각도 없이 육도(六道)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매몰되어 버린 모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며,

'화개'의 기쁨을 결국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흙탕물'을 떠나서는 '화개'도 없는 것입니다.

현실을 딛고 민중 속에서 싸우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의 싹이 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 속에 인간승리의 실증을 나타내 간다 

이 사회에서의 실증이 '화개'인 것이며, 지용의 보살에

의한 이와 같은 사회의 변혁작업을 통해 사회의

'탁(濁)'은 '청(淸)'으로 질적인 전환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또 '흙탕물'이란 깊이 말하면 우리들 인간의

생명이라고도할 수 있습니다.

미혹과 번뇌에 꽉 차고, 숙업에 구속되어

고뇌의 진흙탕 속에 있는 것이 거짓 없는

인간생명의 현실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연화'란 청정한 생명,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불계의 생명을 말하며 정의감(正義感), 정열, 희망,

환희에 넘친 자유자재의 경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흙탕물 위에 나오는 것  그것은 존귀한 인간으로서의

사명감을 말하는 것이며, 민중구제의 책임감, 광포에

끝까지 살아가는 지용의 사명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흙탕물을 떠나 연화가 없듯이, 탁한 번뇌의 당체를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묘법에 의해 보리(菩提:행복, 깨달음)

로  열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화는 진흙탕이 깊으면 깊을수록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말합니다만, 이것은 훌륭한

인생의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괴로움과 미혹의 어두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거기에는

행복과 환희와 이상(理想)의 꽃이 커다랗게 핀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생명이든 사회의 현실이든

괴로움과 오탁(汚濁)을 피하고 행복과 보람에 찬

'화개'는 없는 것입니다.


진흙탕이 깊으면 깊을수록 오히려 용기를 분기시켜

도전해 가는 자세가 인생의 현자(賢者)의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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