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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고뇌, 욕망을 행복으로 열어 간다
창제(唱題)로 풍부한 지혜를 발휘
인간이란 항상 마음과 몸을 괴롭히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니, 괴로움이나 고뇌가 있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법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뇌란(惱亂)시키고, 고뇌의
세계로 이끄는 일체의 망념(妄念)이나 생명의 발동(發動)을
번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과제
그러면 이 번뇌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근본적인 것으로서
탐(貪:대단히 탐내는 것)
진(瞋:분노)
치(癡:어리석음)
만(慢)
의(疑:의심) 악견(惡見:나쁜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파생적(派生的)인 것으로서
방일(放逸:멋대로 행동하는 것),
실념(失念:사물을 잊어버리는 것) 등등 그 종류는 대단히 많습니다.
흔히 백팔번뇌라고 합니다만, 보통 이것을 절에서 연말에 치는
종의 수로 알고 있습니다.
또 8만 4천 번뇌라고 하여 석존의 불교는 이 번뇌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설했기 때문에 8만 4천 법문(法門)이라고
호칭되어 왔습니다.
인간이란 말하자면 번뇌 덩어리와 같습니다.
이 번뇌를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인생에서
중대한 과제가 되겠지요. 앞서 거론한 번뇌 가운데 탐 진 치를
삼독(三毒)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탐이란 모든 일체의 욕망(식욕, 성욕, 수면욕, 물욕, 명예욕 등)의
노예가 되는 것.
진이란 생명의 오저로부터의 분노, 충동적인 감정에 지배되는 것.
치란 사물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마음, 자기 이익을 위해
눈앞의 일에 구애되는 것을 말합니다.
확실히 자기 자신을 응시해 보면 이러한 탐 진 치의 삼독에 마구
휘둘려 고뇌에 잠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번뇌야말로 인간 고뇌의 근원이며 불행에 빠지는 근본원인입니다.
그래서 번뇌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옛날부터 선인(先人)들도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 왔습니다.
즉 번뇌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니
어떤 사람은 번뇌를 끊어 소멸시킴으로써 인간의 고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승(小乘) 사상에서의 회신멸지(灰身滅智)입니다.
몸을 재로 만들어 버리고 지(智)를 소멸시킨다는 대단한 수행입니다.
그러나 번뇌는 인간에게 본연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를 다 없앤다는 것은 생명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두 번째의 입장은 신이나 다른 세계의 부처 등이라 하는
초절적(超絶的)인 관념의 세계에다 문제의 해결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번뇌를 제멋대로 긍정(肯定)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향락에 빠져 버리는 등 결국은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를 파멸에 몰아넣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의 욕망분출 사회나 공해, 정신의 공동화(空洞化)나
황폐현상이 심하게 일어나고 있는 세상(世相)을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악(惡)인가는 명백한 것입니다.
주체성의 확립이 필요
도대체 뒤에 어떠한 해결의 길이 남아 있을까.
니치렌 대성인은 <어의구전> 속에서 「번뇌의 장작을 태워서
보리(菩提)의 혜화(慧火)가 현전(現前)하니」
(어서 710쪽)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번뇌의 근본적인 해결의 열쇠를 번뇌즉보리라는 위대한
원리로서 교시하신 것입니다.
보리란 도(道) 지(智) 각(覺)이라고 번역됩니다. 말하자면
깨달음이나 행복이라는 의미입니다.
번뇌즉보리란 번뇌를 멸진(滅盡)한다든가 번뇌로부터
도피한다든가 번뇌를 멋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그대로 보리로 열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번뇌라는 장작이 있음으로써 그것을 능숙하게 조정하여 불태워
지혜의 불을 나타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번뇌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바르게 써서 다루어 나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성급하여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분노(진<瞋>)도 부정에 대한 것이라면 진(瞋)도
정의감으로서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번뇌를 보리로의 도약대로 전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주체성의 확립, 지혜의 발휘가 필요해집니다.
그 지혜의 원천이 바로 묘법인 것입니다.
현대사회를 구제하는 철리(哲理)
우리들은 번뇌를 명확하게 보고 그 번뇌를 토대로 삼아 행복한
경애를 구축해 가야 되겠습니다.
연화(蓮華)를 예로 보아도 진흙탕 속에서
청정한 꽃들이 피게 됩니다.
고뇌나 번뇌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꽃이 핀다.
즉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번뇌즉보리야말로 우리들의 생활이나 인생을 환희와 강한
생명력에 넘친 행복으로 인도하여 현대사회를 황폐와 혼란으로부터
소생시킬 수 있는 철리(哲理)입니다.
「즉(卽)의 일자(一字)는 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어서 732쪽)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불퇴(不退)의 신심을 확립하여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마음껏 불러
번뇌즉보리의 실증을 나날의 생활과 인생 위에 나타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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