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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成佛)
자비와 영지(英智)에 빛나는 풍부한 생명이 현현(顯現)
절대적인 행복의 열쇠는 나의 흉중에 성불이란 부처라는
강력하고 깨끗한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현실의 생명,
생활, 인생에 열어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세간에서는 이 성불이란 현실의 생활이나 인생과는
동떨어진 무엇인가 중(스님) 냄새 난다 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부처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 깊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불이라는 말의 본래 뜻을 비뚤어지게
하여 불법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성불의 불이란 본래는 불타라는 인도의 말이며,
각자(覺者:깨달음을 연 사람)를 뜻합니다.
그 깨달음이란 우주와 생명을 관철하는 근본의 법을
구명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연 사람 즉 부처는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행복경애를 확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체상(全體像)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만,
자비와 영지를 두루 갖추고, 풍부하고 청정한 생명을 나타내며
복운으로 충만된 이상적인 경애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로서의 경애를 성취하는 것이 성불입니다.
그것은 결코 죽음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후(死後)보다도 도리어 살아 있는 현실에서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본래 그런 굉장한 경애를 구축하여 생애를 끝낸 사람만이
죽음의 모습 그 자체도
부처일 것이며, 성불의 모습을 가져야 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암야(暗夜)의 길을 손을 더듬어 걸어가는 것과 같이,
갈팡질팡하며 살고 있는 범부가 죽는 순간에 개오(開悟)하여
부처로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죽음 그 자체가 성불이라는 것은 단지 일시적 위안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기풍의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성불의 본래
의미를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불이란 인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인생과 행복에 넘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현실상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이 성불의
의의를 바로 배워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성불의 뜻을 생각함에 있어 잊어서 안 될 것은 불법은 대저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해 설한, 보다 잘 살기 위한 종교라는 점입니다.
괴로움이나 고뇌를 안고 있으면서 되는 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확고한 행복의 경애로 인도할 수 있는가 불법은 여기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흔들리지 않는 행복
확립의 철리와 실천의 광명을 비춘 것이 불법입니다.
즉 불법이란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어떤 불행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자기의 생명 속에 비장(秘藏)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생명의 철리입니다.
일체의 불행을 타파하여 행복을 구축해 가는 원천이 되는
그 힘을 불법에서는 불계 불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는 불계,
불성이야말로 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이라는 여러 부처를
부처의 경애로 되게 하는 근원의 종자(씨앗,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간 어려운 표현이 됩니다만, 불법에서 성불이란
그 근원의 종자를 깨달아 아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또 성불이란 문자 그대로 말하면 부처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라면 부처의 경애가 훨씬 긴 먼 저쪽에 있어
거기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미 명백하게 밝혀진 것과 같이 성불의 가능성은
자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불이란 그 속에 있는 가능성이 열려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불의 진실한 뜻은 부처를 열어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니치렌 대성인도 이 사실을 「성(成)이란 연다는 의의(意義)」
(어서 753쪽)라고 분명하게 교시하시고 있습니다.
불법의 철리가 위대한 것은 이와 같이 행복의 근본 원인을 자기의
생명 속에서 찾아 내고 있는 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행복의 열쇠가 자기와 떨어진 어디엔가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그것을 구하기 위해 외부로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구하려 해도 얻어지지 않으면 이번에는 원한의 눈을
외부로 돌려 자기의 불행은 저 사람이 나쁘기 때문에,
저 곳이 좋지 않기 때문에라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하는 무책임한 생활태도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 행복의 열쇠가 자기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은 비로소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강력하고 상쾌한
생활태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처의 경애를 열어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실천이 필요할까요. 대성인은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완성된
부처의 경애와 생명의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설하시어 스스로의 오달에서 부처의 경애 그 자체를 한 폭의
본존님으로 도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본존님을 믿고 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하면 자기의
생명 속에 잠자고 있는 불계가 눈을 떠서 범부의 낮은 경애의
껍질을 깨고 거기에 강력하고 청정한
부처의 경애가 열려 나타난다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 부처의 경애란 물질의 풍부함이나 정신의 안정 등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 전체의 충실감, 약동감입니다.
거기에서 어떤 폭풍우가 불어 와도 미동도 하지 않고 일체를
즐길 수 있는 강력한 인생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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