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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유포를 위한 지도

분쟁·욕망의 격류를 멈추게 하는 광포

by 행복철학자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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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욕망의 격류를 멈추게 하는 광포

자타 불성 믿고 진심·우정의 대화 관철

 

주위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혹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스트레스 과잉인 현대에 무의식 속의

자기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 나아가서 지역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정치와 경제 부패를 조장하기 십상이다.

대승불교, 그 중에서도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적극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타 성불과

불국토 건설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는 대승의 보살,

그 가운데서도 법화경에서

설하는 ‘지용의 보살’의 행동으로 악세말법

시대와 사회를 여는 ‘대화’의

중요성을 알아본다.

 

말법의 ‘묘법유포’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한 나머지 타인과 관계 즉

‘이타의 정신’을 망각한 것이

성문, 연각의 이른바 이승이며, ‘불성불(不成佛)’이라고

석존에게 엄하게 질책 당한 이유다.

석존이 자신의 깨달음을 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 수 있듯이 본래 ‘이타’

‘타인의 구제’는 불법(佛法)의 원점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테마였다.

석존은 입멸 직전, 제자인 아난이 스승의 몸 상태를

걱정하여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편역행자(遍歷行者: 역사를 편찬하는 사람),

수밧다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귀의시켰다.

‘석존에게 돌아가라’는 외침과 함께 자기편중에 대한 반성으로 대승의

보살은 오히려 ‘이타’에 대한 시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구도’는 당연한 것으로

오히려 ‘타인의 구제’를 강조한 것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

그 중에서도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 등장하는 ‘지용의 보살’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여기서 ‘지용의 보살’의 출현 경위를 법화경을 통해 알아보자.

석존은 먼저 <견보탑품 제11>에서 “누가 이 사바세계에서 널리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설할 것인가”라고 보살들에게

호소하고 3회에 걸쳐 멸후의 홍교를 권한다.

그 3회에서는 ‘육난구이’를 설하고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하고 홍통하는 것은

수미산을 들어 타방의 무수한 불토에 던지거나 마른 풀을 지고 큰 불로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보다도 어려운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에 대해 <권지품 제13>에서는 팔십만억나유타의 보살들이 ‘삼류의 강적’ 등의

난이 있어도 “우리들은 모두 참겠습니다”라고 홍교의 서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용출품 제15>에서 석존은 묘법유포를 원하여 나선 보살들을 만류한다.

“그만두어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법화경을 호지할 필요는 없다”라며 말법에

묘법을 홍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이 사바세계에 육만 항하사의 보살들이 있다”라고 설하고

이 사바세계에서 법을 홍통할 사명을 지닌 보살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선언 직후, 대지가 진동하며 출현한 것이 무수히 많은 ‘지용의 보살’이었던 것이다.

 

주위 일체를 행복하게

‘지용의 보살’이 출현한 ‘하방’에 대해 대성인께서는 “하방이란 진리이니라”(

어서 751쪽)

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결국 ‘진리’ ‘생명 오저에 있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에서

출현한 것이 ‘지용의 보살’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 근본의 대법인 남묘호렌게쿄에서 민중 속으로 춤추며 나온

용자(勇姿)인 것이며 그 모습에 대해 ‘지용의 보살’의 대표인 상행보살 등의

사보살의 모습을 “위위당당하고 존고하니라”(어서 211쪽)라고 말씀했다.

‘위위당당’이란 ‘높고, 크고 당당하다’는 뜻이지만 단지 겉모습의 훌륭함 뿐만 아니라

정신의 숭고함, 강인함, 광대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어째서 대승의 보살, 그 중에서도 ‘지용의 보살’은 일체중생의 구제를

맹세하고 그를 위해 온갖 장해를 타파하고 ‘대화’의 행동을 관철하여 사람들의

불계(佛界) 생명을 여는 것 일까.

그 하나의 ‘열쇠’는 ‘기연의 법리’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능작인-증상과’<혹은 증상연-증상과>라고 불렸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점, 다른 모든 것이 그것에 대해

인(또는 연,과)의 작용을 갖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자기 이외의 주위 모든 사물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있다는 광대한 기연의 발상이다.

말하자면, 아무 관계 없는 것 같은 양자도 서로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관계가 있다는 사고방식 이다.

거기에서 자기 이외의 주위 모든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성불로 이끄는 행동이

그대로 자신의 행복, 성불로 이어진다.

대승의 보살이 똑같이 지니고 있다는 ‘사홍서원’의 제1에 ‘중생무변서원도’를

드는 것도 여기에 그 까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원 한사람도 빠짐없이

그럼 여기서 법화경으로 되돌아가자.

경문에는 ‘지용의 보살’을 대표하여 그 리더인 상행보살에게 미래 광선유포를 기탁한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그 상행보살이라는 자각으로 말법에 묘법의 광선유포에 앞장섰다.

더욱이 대성인이 “니치렌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어서 1360쪽)

라고 말씀하셨듯이 대성인의 대원인 광선유포 실현을 위해 전진하는 학회원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지용의 보살’이 된다.

또한 ‘지용의 보살’이라는 옥중 오달로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광선

유포를 위해 홀로 일어서신 분이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이었다.

세계광포의 원점이 되었던 것이 이 때 도다 제2대 회장의 오달이었다.

“나는 지용의 보살이다!”

이 도다 제2대 회장의 대확신에서 광선유포의 장대한 흐름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도다 제2대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1960년 세계광포를

향한 평화 여행의 길에 올랐다. 그리고 현재, 니치렌 대성인 불법은 5대륙

세계 1백90개국으로 넓혀졌다. 실로 세계 광선유포의 시대가 도래했다.

 

환희의 대화 확대를

이케다 SGI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우리들에게 지용의 출현이란 21세기, 22세기, 23세기 그리고 만년의

미래로 이어지는 ‘지구혁명’을 향해 출범하는 팡파르로 받아들이고 싶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문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대방법(大謗法)이 나라에 있으니 대정법(大正法)이 반드시 넓혀지리라.

여러분은 무엇을 한탄하시리오. 가섭존자가 아닐지라도 춤을 추어라.

사리불이 아니더라도 일어서서 춤을 추어라. 상행보살이 대지에서 나오실 때에는

춤추며 나오셨느니라”(어서 1300쪽)

“상행보살이 대지에서 춤추며 나왔던 것처럼 즐겁고 용감하게 춤추며 전진하세요”

(‘법화경의 지혜‘ 제3권)라고.

‘지용의 보살’의 사명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의 역사,

사회의 대지에 내려와 즐겁게 용약하여 진심과 성의와 용기의 ‘대화’로

끝까지 사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타의 ‘불성’을 믿고 환희의 ‘대화’ 확대로

‘인간존중’의 대도를 개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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