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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생명의 의식 세계를 해부해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항상 기쁘고 희망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것 같은 ‘이상적인
삶’을 꿈꾸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은 무지개 너머도
아니고, 천국도 극락도 천당도 이상향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명심해야 합니다.
불법은 나의 흉중, 즉 인간생명의 내부의 세계에
빛을 비추어 거기에 빛나고 있는 경애를 열어
나타내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법의 눈은 생명을 깊이 분석하여 그 오저에
‘불계’라는 아름답게 빛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아홉가지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의 내면 보다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겉모습의 초라함이나 화려함에 상관없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찬연히 빛나는 위대한
생명이 있습니다.
불법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극의 생명을
불계라하고 또 외계의 사물을 식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작용을 아홉가지로 분류한
구식론에서는 이 존극의 생명! 즉 불계를
‘구식심왕진여의 도’라고 합니다.
구식! 심왕! 진여! 각각의 말속에는 불법
철리상의 깊은 뜻이 들어있습니다.
마음의 작용을 9종으로 분류한 아홉가지 의식!
모든 마음의 작용을 컨트롤하는 마음의 왕!
그 어떤 것에도 농락 당하지 않는 가장 강력하고
청정한 본연의 생명인 관계로 진여!
그리고 누구나 꿈꾸는 이상의 도읍!
자신의 마음속에 존극의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법은
다각적인 측면에서 불계의 실체를 밝히는데
석가모니 부처는 무수한 경전으로 불계의
실체를 설했고 정신세계의 측면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는 법리가 바로 ‘구식론’입니다.
구식(九識)이란
우리들이 사물을 판단하거나 생각하는 마음의 작용
<=식(識)>을 깊이 파고들어가 단계별로 아홉가지
층으로 구분한 것을 말합니다.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마라식(阿摩羅識)
구식론은 한자말 그대로 의식활동이 일어나는
정신세계를 아홉 단계로 구분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정신세계와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정신세계로 구분되는데 이는
식물의 구조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즉 땅 밖으로 드러난 가지와 잎 부분은 제1식에서
제7식이, 땅 속의 뿌리는 제8식과 제9식이 됩니다
안식에서 의식까지의 6식은 환경을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며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면, 화려한 외관의 레스토랑이 생겼다.
어떤 가게일까 들어가 보니 가게 안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하자, 이윽고 요리가 나오고 좋은
냄새가 난다.
나이프와 포크로 입에 한 입 넣자, 생각대로 ‘매우 좋은 맛’.
스프의 접시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이렇게 우리들은 보거나,(안) 듣거나,(이) 냄새를
맡거나(비) 맛보거나(설) 만지거나(신체접촉) 하는
오감과 육감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6식까지의 (의식) 판단력밖에 없다면
충실하고 보람이 있는 인생을 만들 수 없습니다
먼저 제1식에서 제5식 까지를 알아봅니다.
우리는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을 각각 눈, 귀, 코,
혀, 몸을 통해 인식합니다.
이때 빛이나 소리를 받아들이는 눈, 귀 같은
기관을 불법에서는‘근’이라고 하고, 각 기관이
받아들이는 빛이나 소리 같은 외부현상을
‘경’(소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외부현상을 받아들여 반응하는각 기관의
의식작용을 각각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고 하는데,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홍채가 자동적으로 커지는 것은일종의
안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6식 의식의 세계
그리고 한 단계 더 들어가, 이 오식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반응을 일으키는
정신작용이 제6식으로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6식의 특징은 우리의 의지를 통해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소변이 급해도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장소에서는 소변을 보는 분은 없을 겁니다.
어쨌든 이러한 본능적인 활동을 제어하는 한 차원
깊은 의식작용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자아의식인 제7식입니다.
7식=말나식(末那識)(자아의식)
6식보다 더 깊은 곳에 7식인 말나식이 있습니다.
현대로는 자아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식은 보다 깊은 사색을 통해 자신을
헤아리므로 ‘사량식’이라고 하며, 서구 사상의
“생각하는 자아(自我)”, 즉 이성(理性)에 해당한다.
서구 근대 사상은 ‘생각하는 자아’ 즉 이성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불법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옛날에 이미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그러나 이성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제7식이 자아의식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완벽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마음 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에,
인간의 괴로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태어날 때부터 행·불행 결정되는 것처럼, 또는
무엇이든 하는일 마다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밀한 계획을 세웠는데도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7식의 정신세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이7식마저 간단히 조종하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힘 역시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설명합니다.
8식=아뢰야식(阿賴耶識)
번역하면 함장식(含藏識)이 되며, 아뢰야식은
무의식의 생명이며 구원의 과거로부터 자신이 쌓은
행동(업:業= 생명의 버릇) 일체가 저장된 곳을
말합니다.
이곳에 쌓인 선악의 과보가 현재의 자신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경험을 축적해 가는 과정속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갑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중에는「나는 성격이 급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주위에서 모두
성격이 불같다고 인정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래의 자신과는 다른 이미지가
8식에 축적되어 자기 자신도 ‘그렇다’라고 믿어
버리고, 생명 안에 고정화 시켜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숙업으로 이루어진 자기를 알았다고 해도 불행한
숙명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팔자려니…’ 라고 체념한 채 살아가야 할까?
자신을 컨트롤해서 더욱 멋진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佛法의 영지는 이미 업을 축적한 생명창고의
더 깊은 곳에서 9식을 발견한 것이다.
이 9식은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고 하고,
‘근본정식(根本淨識)’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의 가장 오저의 일체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식(識)’이기 때문입니다.
구식은 삼라만상 일체를 출생시키는 대우주의 조화
그 자체이며, 어떠한 숙업에도 좌우되지 않는
청정한 불계의 생명을 말합니다.
불계의 경애 자체인 이 구식은 모든 마음에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본체이기 때문에 ‘심왕
(心王-미음의 왕)’이며, 청정한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라 ‘진여(眞如)’라고 말합니다.
비록 그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거대한 정신세계, 그것이 바로
제8식입니다.
제8식은 다른 말로 아뢰야식, 함장식이라고
합니다. 뭔가를 저장한다는 뜻으로 흔히
숙업(생명의 버릇)을 쌓는다’할 때 그 업이
쌓이고 저장된다는 뜻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팔자라고도 하죠. 그렇다면
이 제8식에는 무엇이 쌓이는 것일까요.
6, 7식이 받은 자극이나 스스로 일으킨 의식, 또
그를 통해 바깥으로 행한 말이나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짐 없이 그 결과가
제8식에 저장됩니다. 마치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이 땅 속 뿌리에 쌓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과보라고 하는데, 탐욕, 시기, 모함과 같은
나쁜 과보와 평온, 기쁨, 향상심,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 같은 좋은 과보도 있습니다.
이는 또 무수한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크기는 밖으로 드러나는
의식세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또 과거의 업보는 살아 있는 동안 6, 7식의 자극에
응해 반드시 의식세계로 솟구쳐 나옵니다.
예를 들어 전생에 사람을 도운 과과거의 업보가
많다면,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과거부터
연을 맺은 사람에게서 적절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즉 제8식에 쌓여 있는 악한업과 선한업의 양에
따라 인생의 행불행은 갈라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제8식은 생사를 뛰어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을 관장하는 모든 기관이
사라져 7식도 없어지고 제8식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물 한방울이 녹아들 듯 자신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우주로
녹아들게 됩니다.
결국 죽은 이는 외부를 향해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죽은 이는 제8식의 내용에 따라
그 상태에서도 행불행을 느낍니다.예를 들어 정말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는데도 깨어날 수도 없는
상태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설사 깨어났다
하더라도 몸은 녹초가 되어 있을 겁니다.
이는 제8식이 악업으로 가득한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서
겪는 것과 비슷합니다. 때문에 다시 세상에 태어나도
기력이 다 빠진 상태에서 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반대로 선한업이 가득한 사람은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꾸며 푹 자고 일어나듯, 사는 동안 써버린
기력을 다시 회복하고 원기왕성하게 태어나
힘찬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삶의 모든 것이 제8식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한 의지와 노력으로 선한업을 쌓으면
그만큼 제8식을 구성하는 선과 악의 성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지구상에는 그 업의 크기가 너무 커서 숙명의
무게에 지고 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그마저도 움직일 수 있는 더욱
거대한 정신세계를 발견했습니다.
9식은 1식~8식까지 모든 생명을 조절하는 최고의
생명이자 내 생명 속의 불성, 불계를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사실 이 제9식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제9식은 대우주 그 자체로서 모든 생명을 낳게
하고 움직이는 근원의 법칙이자 극선의 힘입니다.
또 어떤 악업에도 물들지 않는 청정하고 힘찬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과 행복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구식심왕진여의 도를 통해
우리는 모두 함께 최고로 빛나는 당당한
인생을 구가해 갔으면 합니다.
이상 생명속에 얕은곳 부터 깊은곳까지의
의식의 세계를 해부해 보았습니다.
생명의 기저부에 불게의 생명을 수시로 열수있도록
신심의 단련에 단련 정진에 또 정진해 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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