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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게는 자신의 생명을 설한것이다
자(自)란 시(始)이고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의 신(身)은 종(終)이며,
시종(始終) 자신(自身)이고 중간(中間)의 문자(文字)는 수용(受用)
이니라. 따라서 자아게(自我偈)는 자수용신(自受用身)이니.
(어서 759쪽)
통해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의 자(自)는 자아게(自我偈)의 첫 문자며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의 신(身)은 마지막 문자다.
그러므로 처음과 끝 문자를 합해 자신이 되고
자아게 전체가 별해서는 니치렌 대성인 자신의 일을 설하고
총해서는 신심을 수행하는 사람 자신의 생명을 나타내고 있다.
그 중간의 문자는 수용 즉 활동을 의미하고 삼신여래의
소작(所作)이다. 그러므로 자아게는 자수용신이 된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읽고 있는 경문에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제16의 자아게가 있다.
이것은 법화경의 진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법문의
골수가 밝혀져 있다.
자아게를 보면 이 성훈에 나온 것처럼 부처와 중생
생명의 본질과 행동을 설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니치렌(日蓮) 대성인 총해서는 묘법(妙法)의
신자인 '자신'과 그 '수용'즉 활동과 행동 그리고
소작을 명쾌하게 설해 밝히고 있기 때문에
자아게가 존귀한 것이며 자수용신을 밝히고 있다.
자수용신이란 별해서는 니치렌 대성인의 생명이며
청정하고 광휘에 넘치고 막힘 없이 자유자재로 인생을
구가하며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고 가장 주체성 있는
힘찬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
본존님께 쉽사리 경지명합하지 못하는 생명의 약함과 신심의
약함을 한탄하는 사람이 있지만 끊임없이 그처럼 반성하고
근행의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언제나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진(精進)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수용신의 사람이고자 한다면 근행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아게의 독송과 창제는 거기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신선한 마음으로 임하자.
"여하튼 법화경을 굳이 설해 들려주어야 한다. 그것을 듣고
믿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 비방하는 자는 그것이
'독고(毒鼓)의 연'(=역연<逆緣>)이
되어 부처가 된다. 뭐라고 해도 부처가 되는 종자는
법화경 외에는 없다."
(어서 552쪽, 통해) 광선유포를 위해 용기를 내서 말하고
행동한 것은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신을 위한 것으로 된다.
대성인은 일문(一門)이 박해를 받는 중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러한 자(=일본제일의 법화경 행자인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 단나가 되는사람들은 숙연이 깊다고
생각해 니치렌과 같이 법화경을 넓혀야 한다."
(어서 903쪽, 통해) 정의이기 때문에 질투를 받고,
비판을 받으며, 박해를 당한다. 힘들지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불법의 법칙이다. "나와 숙연이 깊다고 각오하고
광선유포에 힘써라." 대성인은 그렇게 격려하신다.
중상을 당하고 비판을 받아도
그런 것쯤으로 좌절하면 안 된다. 정의롭기 때문에 받는
박해는 그 자체가 영원한 영예이며,
복덕으로 바뀐다. 영원한 승리가 아닌가. 박해 따위,
바람이 조금 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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