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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불법세미나

불퇴(不退)의 창제(唱題)가 신앙자의 자격

by 행복철학자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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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퇴(不退)의 창제(唱題)가 신앙자의 자격

법화경일부(法華經一部)의 간심(肝心)은 남묘호렌게쿄

(南無妙法蓮華經)의 제목(題目)


이외다.  조석(朝夕)으로 부르시면 틀림없이 법화경일부를

진독(眞讀)하시는 것으로 되며,
두 번 부르면 이부(二部) 내지 백 번은 백부(百部) 천 번은 천부(千部)
이렇게 불퇴(不退)로 부르신다면 불퇴로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서 1402쪽)

        통해

법화경일부 팔권 이십팔품의 근본은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제목을 부른다면 그야말로

법화경일부를 진정한 의미로
읽은 것이 된다.

제목을 두 번 부르면 법화경일부를 두 번 읽은 것으로 되며,
백 번이면 백 번을, 천 번이면 천 번 읽은 것이 되어,
이처럼 퇴전하지 않고 제목을 부르면 불퇴전으로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을 부르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말씀하신 글월이다.
'남묘호렌게쿄'는 두말 할 필요 없이 법화경 이십팔품의

간심이자 근본이다.

오히려 법화경의 전품은 모두가 '남묘호렌게쿄'를

설명하기 위해 설해졌다고 해도 좋다.

그것을 최초로 발견하신 분이 니치렌 대성인이다.
대성인 재세 당시 법화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거나

혹은 수행으로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라는
오종(五種)의 묘행(妙行)을 실천하기도 했지만
진정한 구제를 원하는 민중과 동떨어졌다.

대성인은 이것을 타파하고 단지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것만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셨다.
그리고 불교를 일반 민중에게도 크게 열어 주셨다.

지금 우리들도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면서 그 힘을

현실에서 느끼고 있다.

이러한 실감과 체험을 소중히 해야 한다.
자칫하면 범부는 처음의 감격을 잊어버리기 쉽지만
이 글월에서 나온 것처럼 '불퇴전'의 창제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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