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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위의 흙
석존이 사위성에 머물고 있었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석존은 두 손가락으로 모래를 집어
손톱위에 얹고서 이렇게 말했다.
제자들이여, 모든 것은 변화한다.
지금 우연히 손톱위에 얹힌 이같은 얼마 안 되는 흙
도 무상에서 변화한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해되겠지. 상주해서
변치않는다는 성질을 갖는 것은 세상에는 없다.
제자들이여, 만약 세상에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고(苦)라고 하는 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될 지도 모른다. 아무리 청정한 불도수행을
해도 고생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멸할
수 없는 것으로 되는지도 모르겠다.
제자들이여, 세상에는 상주해서 변화하지 않는 것
등이 손톱위의 흙만치 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청정한
불도수행에 의해 고생이라고 하는 것을
멸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제자들이여, 세상에는 상주이며 변화하지 않는
감각 등도 이 손톱위의 흙만치 조차 없다. 만약 세상에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감각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청정한 불도수행을 행해도 고생이라는 감각을
멸할 수는 없는 것으로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자들이여, 세상에는 상주이며 변화하지 않는
감각 등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정한 불도수행에 의해 고(苦)의 감각을
멸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석존은 가르침을 설할 때 언제나 가장 상대의 마음에
울리는 방법을 취했다.
이번 경우에는 극소량의 모래를 손톱 위에 올려놓고,
무상을 설했던 것이다.
우연히 집어 올린 모래, 그나마 미끄러지기 쉬운
손톱위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광대한 세계에 비해 극히
미소한 양이다. 이 모래도 원래는 큰 암석이었던 것이,
부서져서 이같은 아주
작은 알맹이로 된 것이고 지금
부터도 계속 변화해 가는 존재이다.
이 모래를 예로 하여, 석존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모두는 덧없는 무상의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 위에서, 석존은 보통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역(逆)의 방향으로
논리를 진행시킨다.
즉 보통 무상이라고 하면 지금의 행복이나 젊음,
번영이 머지않아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하고 슬픈 기분으로 빠지기 쉽다.
그러나 석존은 고(苦)도 변화한다.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오히려 희망을
갖도록 격려한다. 끝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고에도 언젠가는 끝나는 때가 오는 것이다.
본래 무상관은 절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설해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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