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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苦에서의 해방을 목표로 한 佛法
생사를 지켜보는 불법의 지혜
불교탄생의 원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나가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생사(生死)를 해명하고 이
고(苦)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석존(釋尊) 출가의 동기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에피소드가 보여주고 있는 대로다.
사문유관은 석존이 출가하기 이전 싯다르타 태자였을 때, 하루는 왕성의
4대문 밖으로 놀러 나가려고 하는데 동문에서는 노인을, 남문에서는 병든 이를,
서문에서는 죽은 이를 그리고 북문으로 나가려고 하였을 때에는 근엄하고
위의를 갖춘 사문(沙門=출가자 出家者)을 보자 그 청정한 모습을 보고
출가(出家)할 것을 결의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석존이 출가한 동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네 가지의 고, 즉 사고(四苦)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불교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불전(佛典)에는 불사(不死)에 이르는 문이라든가 불사에 이르는
길과 같은 표현이 쓰여지고, 또 불도수행을 완성한 해탈자(解脫者)를 생사(生死)를
명찰(明察)한 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잊어버리고 만 현대문명
그러면 왜 불법(佛法)은 생사의 문제를 바로 정면으로 응시했던 것일까.
그것은 우리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다른 어느 것보다 생사라고 하는
틀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사를 극복하지 않고는 우리들의 인생의
안정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사의 문제는 불법 이외의
많은 종교나 철학에서도 중시해 왔다.
또 종교자나 철학자에 한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문제와 표리(表裏)를 이루는 문제로
인생관의 근본에 두어 왔던 문제였다.
예를 들면, 에도시대에 저술된 《하가쿠레(葉隱)》 (에도시대 江戶時代)
중기에 저술된 무사의 수양서)에는 무사도(武士道)란 죽는 일이라고
찾아냈노라고 하는 생사관이 보여지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일본의
특공대원은 나의 생명을 버려서 민족의 유구한 대의에 산다며 목숨을 내던지고 갔다.
생각의 옳고 그름은 어쨌건, 일본인은 항상 몸 가까이에 죽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는 죽음을 잊어버린 문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말하고 있어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보고 내면을 지켜보는 일이 잊혀져 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죽는가라는 문제가 테마로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하나가 의료기술의
눈부신 발전이라 하겠다.
전세계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은 아직도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일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사망하는 장소는 병원의 병실이고,
지금보다 한두 세대 전까지 가정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숨을
거둔다고 하는 예는 아주 드문 편이다. 이같은 현상도 사람들에게 죽음의
현실감을 상실시키고, 죽음을 먼 존재로 하게 하는 한 원인일 것이다.
전에는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이라든가 우인, 이웃에 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상사(喪事)가 생길 때, 그것을 몸 가까이 느끼면서 부딪쳐 가는
기회가 많았다. 그같은 시대에는 죽음은 일상생활 속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몸 가까이
생각하는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생활에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바른 신앙으로 영원에 이어지는 귀한 인생을
삶의 의미 생각하고 사는 방식을 새로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주변에서 죽음이 사라졌다고 하겠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열심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떻게 성공하는가 어떻게 하면 합격할까하는 따위의
것들이고, 생사라고 하는 심연(深淵)과도 같은 깊고, 무섭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한 문제와는 비할 바도 못되는 부박(浮薄)한 것들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떻게 죽는가를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죽음과 마주 바라보고,
자기라는 존재의 유한성(有限性)을 자각하고, 자신의 사는 방식을
다시 물어본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인생이 한정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 제한된 삶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가치관이 태어나는 것이다. 결코 부정적인
인생관은 아니다. 인간은 죽음과 마주 바라보는 데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보다 깊게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죽음의 준비교육을 제창(提唱)해서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죠지대학(上智大學)의 알폰스 데겐 교수의 흥미깊은 시도가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반년밖에 살지 못한다면이라는 전제를 주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하는 테마로 소논문을 쓰게 하고,
동시에 주변의 친한 사람에게 이별의 편지를 쓰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거의 대부분 학생이 표명하고 있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사용해서 자기 생의 의의를 확인하고 싶다는 원망(願望)이다. 그리고 교수는
죽음을 맞이해서 결국 묻게 되는 것은 생(生)이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生)에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생(生)이면 정말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알폰스 데겐
《죽음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고 결론짓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데서야말로 삶도 빛을 발하고 그곳에 위대한 의미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영원의 법과 일체임을 각지
거기에 본유(本有)의 생사가
니치렌(日蓮)대성인은 어느 여성문하에게 사람의 수명은 무상이니라,
나오는 숨은 들어가는 숨을 기다리는 일이 없느니라. 바람 앞의 이슬도
역시 비유가 아니며, 현명함도 어리석음도 늙음도 젊음도 무상(無常)은
상례(常例)이니라, 그러므로 우선 임종(臨終)의 일을 배우고 후에 타사(他事)를
배워야 한다(어서 1404쪽)라고 말씀하셨다.
어떠한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므로, 먼저 생사의 문제에 대해 맨 먼저
배워야한다 라고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이다. 생사(生死)를 무시하고 그것과
마주치지 않는 삶의 방식은 가장 중요한 인생의 근본문제를 먼저 보내버리고,
항상 자신의 존재의 기반에 불안을 계속 껴안고 살아가는 방식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자기 인생의 근본적인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또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그저 하찮은 사소한 일상성(日常性)에 떠밀려 흘러 내려가는
인생일 것이고, 그곳에는 혼의 빛남도 생명의 다이나미즘도 없는 것이다.
원시불전(原始佛典)에는 인간의 수명은 짧다. 훌륭한 사람은 마땅히 그
것을 가벼이 하라. 두발(頭髮)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 사람과 같이 행동하라.
죽음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일절(一節)이 있다.
불법(佛法)은 생사를 지혜의 빛으로 파악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죽음을
무서워하고, 생사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도망치려고 하는 것은
동물적인 일이다. 죽음에 대해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알고 생사를 분명하게 볼 수가 있는 것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지혜의 힘인 것이다.
〈어의구전(御義口傳)〉에는, 생사(生死)를 보고, 염리(厭離)함을
미(迷)라 하며 시각(始覺)이라 한다, 그리고 본유(本有)의 생사라고
지견(知見)함을 오(悟)라고 하며 본각(本覺)이라고 하느니라(
어서 753쪽 17행~754쪽 1행)라고 설해져 있다.
현상(現象)으로서 생기(生起)하는 생사의 내오(內奧)에 영원한 법의
존재를 보고 그 법과 일체(一體)인 나의 생사를 자각할 때, 생사는
염리(厭離)하는 것은 아니고, 본유(本有)의 생사로서 영원의
상(相) 속에 현출(現出)되어 오는 것이다.
그 영원의 진리를 보는 힘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불도수행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지혜다. 이 지혜의 힘에 의해 영원한 생명 속에서의 이
생사 즉, 나의 일생을 다시 고쳐 파악할 수가 있고, 금세(今世)의
인생을 진정 의미 있는 것으로 할 수가 있다.
모름지기 마음을 하나로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도 부르고
타인에게도 권하는 일만이 금생(今生) 인계(人界)의 추억이 되느니라(어서 467쪽)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이 자타(自他) 모두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야말로
영원에 이어지는 가장 존귀한 일생으로 된다는 것을 명기하고, 바른
불도수행에 의해 자신의 생명을 갈고 닦아 인생의 참 맛을 만끽하는 인생을 걸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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