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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신앙과 실천

실천교학- 경애혁명과 신앙

by 행복철학자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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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학> 경애혁명과 신앙 

 

행 불행을 결정하는 일념의 역용

 

우리들은 행복을 찾아서 매일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자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똑같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불행이나 절망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등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17세기 영국의 대시인(大詩人) 존 밀튼은 마음은

그 자체가 자기의 장소(場所)로서 스스로가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변하게 할 수가 있다고 적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意志)로 지옥을 천국으로도 천국을

지옥으로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밀튼의 말은

불법과도 통하는 깊은 사색의 도달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보가 하나하나의 인식 이해에 차이를

 

어서(御書)에 아귀(餓鬼)는 항하(恒河)를 불이라고 보며,

사람은 물로 보고 천인(天人)은 감로(甘露)라고 보니,

물은 하나이지만 과보(果報)에 따라서 따로따로 이니라.

(어서 1025)고 있다.

 

같은 강물의 흐름인데 탐심(貪心)에 지배된 자에게 있어서는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이 불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평정(平靜)하고 인간적인 상태의 자에게는 그대로

물로 보이며, 그리고 즐겁고 기쁜 마음에 감싸인 자에게는

그저 단순히 물이 아니고 고뇌를 해결해 주고 수명을 늘리는

훌륭하고 거룩한 감로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일한 것을 보았더라도 보여지는 바가 서로 다르다.

 그 차이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대성인(大聖人)은 그것을 과보(果報)에 의한다고 말씀하셨다.

과보란 과거의 온갖 업인(業因)에 의해 가져와진 현재의

생명경애(生命境涯)를 말한다.

 

즉 그 사람의 경애가 사물을 보는 태도, 느끼는 태도를 결정해

간다고 설해져 있다.

따라서 동일한 조건인데도 개개인의 과보인 생명경애가

서로 다른데 따라서 상위(相違)에 동일한 조건을 파악하는

태도나 느끼는 태도에 큰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연에 의해 생하는 십종의 생명경애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들은 가지가지 생기는 일에 대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또 평온하고 안정된

인간다운 기분으로 되었다가도 금새 욕망에 충동받아 탐욕에

빠지거나 절망을 느끼는 등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움직여 간다.

 

불법에서는 이들의 생명의 출현을 열종류의 차별의 경지로 해서

십계(十界)로 분류하고 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 , 성문, 연각, 보살, ()

10종의 생명경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의 생명은 순간순간의

연에 의해, 항상 이 10계의 생명경애 중의

어느 것을 나타내 가게 된다.

 

비유해 말하면 이 공간에는 가지가지의 전파가 교차되고 있다.

결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신기의 주파수를 맞추면

원하는 대로 전파를 잡을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전파끼리는 서로 부딪치는 일도 없고 혼란하는

일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현재(顯在)시키는

10종의 생명도 이 전파처럼 서로 섞이는 일없이 그러면서도

 혼연일체로 되어 융화되어 있다. 그것이 갖가지의

()에 의해 현재화(顯在化)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광선유포의 신심에 변혁의 요점이 생명의

경향을 플러스로 전환한다

 

 10종의 생명경애는 그때그때 연에 응()해서 어느 한가지가

 나타났다 싶다가는 어느새 다른 경애로 바뀌고, 바뀌었다

싶으면 또 다른 경애가 나타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럿이서 같은 연()에 부딪혔을 때 제각기 나타나는

생명경애는 그 나타나는 태도에 개개인의 퍼스널리티라고도

 할 저마다의 경향성(傾向性)이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 특유의 받아내는 태도, 행동의 방식 등 요컨데

 버릇이라고 할 그런 것이다.

 

예를들면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 한다면 다소의 곤란에는

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전진의 디딤돌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환경의 거친 파도에

부대껴 찌부러져 버리고 말 것이다.

 

너그럽지 못하고 성급한 성격의 사람은 증오나 파괴욕에 충동받은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기 쉽게 마련이다. 또 애정이 풍부한

성격은 사람들에게 안심과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

 

이같이 개개인은 생명전체의 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불법은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경애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플러스되는 방향으로

적응해 가도록 하고 확실한 것으로 해간다.

 

자기의 생명의 버릇을 파악하고 성장의 원동력으로 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목표로 하는

경애혁명인 것이고 신앙의 제호미(醍好味)라는 것이다.

 

지혜와 자비를 발휘해서 확실한 궤도를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기의 경애를 높여가자, 보다 좋은 자기를

쌓아나가자 라는 강한 구도의 일념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우리들 자신의 경애혁명의 근간(根幹)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귀는 항하를의 어문(御文)을 통해서도 분명한 바와 같이

사물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이해, 판단되는가에 의해

 우리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행, 불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점이 된다.

 

확실히 현실이라고 하는 데에는 고난이나 곤란이라는 풍파가

의례히 따르는 법이다. 잔물결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인생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곤란에 직면한 때 사물(事物)을 어떻게

받아내고, 또한 타고 넘을 수 있는 자기로 성장해 가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들의 매일매일의 근행창제나

자행화타(自行化他)에 걸친 학회활동은 자신의 생명의 버릇을

변혁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의 가지가지의 연()에 부딪치면서도 다른사람을 살리며

 자기 변혁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경애혁명의 궤도인 것이다.

종종잡다(種種雜多)한 현실 속에서 지혜를 발휘하고 자비의

행동을 해나가는 가운데 풍요롭고 거룩한 경애를

확고하게 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왕성한 생명력으로 매일매일 착실하게

 

그것에 필요한 것은 광선유포를 근본으로 하는 신심인 것이다.

 이케다(池田)SGI회장은 법화경의 지혜 속에서

도다(戶田)선생님은 생전에 여러가지의 지도를 하셨다.

전부 그대로 입니다하는 듣는 태도를 해왔습니다.

전부 그대로 입니다하고 실천해 왔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마음의 스승으로는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말라

(어서 1025)고 있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광선유포라고 하는

숭고한 목적에 일념을 정하고 법을 근본으로 인생을

걸어가는 속에서 경애를 높이고 부동(不動)의 것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수많은 동지들이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흔들림 없는

실증을 통해 분명하다. 개개의 경애혁명의 걸음은 느리고

더딘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한 일념은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반드시 최고의 경애를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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