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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교학은 인간혁명의 원동력
이 절에서는 인생의 올바른 궤도로 똑바로
나아가려면 이서를 몸으로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교학을 연찬하는 이유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투쟁에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1271년 10월, 다쓰노구치법난의 폭풍우가
니치렌 대성인을 덮치고 지나간
뒤의 일입니다. 대성인은 유배지 사도로 출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진실을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법화경은 종이에 씌어 있는 대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어도 그 경문대로 행동하기는
어렵지요."(어서 1001쪽, 통해)
그리고 대성인이 지금 홀로 대난을 받으며
"경천증질(輕賤憎嫉)"(법화경 199쪽)
"유다원질(猶多怨嫉) 황멸도후(況滅度後)"
(법화경 362쪽) 등의 경문을
여설수행(如說修行)하여 '몸으로 읽고 있다'고
엄연히 드높이 선언하셨습니다.
대성인의 사자후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가슴을
분명 격렬하게 뒤흔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제자여, 너희들은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어서는 '영원의 경전'입니다. 어서는
대성인의 '혼의 외침'입니다.
마성이 뒤덮은 악세(惡世) 말법(末法)에,
법화경을 수행하는 우리들 위해 '용감히
싸워 절대로 퇴전하지 마라!' '인생을 승리로
장식하라!' '단호히 악을 물리쳐라!'
하고 엄연히 남기신, 대성인의 사자후,
정의로운 외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제자 또한 모두 어서를
배독할 때마다 자신에게 깊이 물어야 합니다.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너는 어떻게
투쟁할 것이냐 하고.
'몸으로 읽는다'는 것은 남의 일처럼 또는
옛날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로 '현재의 일'로 받아들여 자신
인생의 투쟁에 맞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제일체'가 되는 엄숙하고
올바른 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구절이라도 좋습니다. 한줄이라도 좋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다!' '이 어서는
지금 내게 주신 것'이라고 생명에 깊이 새기고
엄연한 신심으로 일어서 새로운
광포의 투쟁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이 "어서를 심간에 새기어"(
어서 1618쪽)라고
말씀하신 닛코(日興) 상인의 유계(遺戒)를
지키는 일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전쟁이 한창일 때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2년 동안 힘든
옥중생활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내 일생의 사명은
광선유포'라고 궁극의 사명을 자각하셨습니다.
원통하게 옥사하신 마키구치 선생님의
제자로서 거만하고 비열한 무리에게
복수하겠노라 맹세하셨습니다. 총살형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출옥과 동시에 광선유포의
대투쟁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법난(法難)을 받은
다른 제자들은 모조리 퇴전했습니다.
<개목처>에는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어서 234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필요할 때'에 두려워하며 겁을
내 스스로 정의의 보검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한탄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어째서 감옥에 들어갔다고
퇴전하고 마는가. 가장 영광스럽고 영원에
걸쳐 큰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어서에는 어디에도 비겁한
신심 따위 씌어 있지 않다.'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반성하셨습니다. 곰곰이
생각하셨습니다. 밤낮으로 계속
생각하셨습니다. '어째서 퇴전하고 말았을까'
- 천재인 도다 선생님은
이렇게 결론지으셨습니다.
'신심의 추진력이 되어야 할, 신심의
무엇인지 밝히는 교학이 없었다.
어서 연찬을 잊었다.
교학 즉 어서만 심간에 새겼더라면
퇴전 따위 할 리가 없다. 겁쟁이가
분기하고 일어나 용감하게 꿋꿋이
투쟁하려면 어서다! 어서밖에 없다!'
그 체험으로 깊은 깨달음을 얻은
도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학회는 간부도
회원도 어서를 늘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교학이 없는 불법은 없습니다.
신심이 없는 불법은 불법이 아닙니다.
시간만 있으면 어서 연찬에 힘썼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회합에서
어서를 배독하고 논하고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혼의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원대한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빛났습니다.
어서 배독은 인간혁명이었습니다.
어서 배독은 신심을 무한대로
심화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학은 관념적인 교학이
아닙니다. 암기하는 교학도 아닙니다.
학자가 되기 위한 교학도 아닙니다.
대성인의 교학은 꿋꿋이 사는 힘, 끝까지
투쟁하는 힘,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데
힘이 되는 교학입니다.
그 교학을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인생의 온갖 현실과 싸워 전진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한
교학이자 대철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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