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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행동이 바로 불법자의 본질
지용보살은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의
대지에서 묘법(妙法)을 실천하고 넓히는
행동이 바로 광선유포의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관념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인생의 진수(眞髓)를 설한
불법의 생명도 ‘행동’에 있습니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출세의 본회(本懷)는
사람의 행동에 있었소이다.”
(어서 1174쪽) 즉 “교주석존이 세상에 나오신
근본 목적은 사람으로서
행동하는 길을 설하기 위해서다.”
몇 번이나 배독한 어서입니다. 불법은
‘사람의 행동’ 즉 인간으로서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올바른 행동’에 ‘올바른 인생’이 있고 ‘
올바른 불법’도 있습니다.
또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어서 1361쪽) 즉 “행학이 끊어져 버리면
불법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불법을 스스로 실천하고 넓히는 ‘행동’을
떠나서 불법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입으로 아무리 근사한 말을 해도 그것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라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또 심지를 구식(九識)에 갖추고 수행은
육식(六識)에서 하라.“(어서 1506쪽) 즉
”마음의 경지를 구식(九識, 생명의 근본이
되는 가장 깨끗한 경애)에 두고, 수행은
육식(六識, 마음을 단련하는 현실)에 두고 하시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에서 행동하는 일이 바로 불도수행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법화경에서는 ‘지용보살’의 모습을 설합니다.
‘대지에서 용출한 보살’ 여기에는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지만, 구원이래 본연의
‘사명’을 띠고 스스로 민중 속으로 뛰어나온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권위’나 ‘형식’ 따위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깊은 차원의 내용을 설합니다.
또 현실의 대지에서 묘법을 넓히는 사람이 바로
‘지용보살’입니다. 즉 우리를 말합니다.
이 지용보살의 리더인 사보살의 이름은 상행,
무변행, 정행, 안립행입니다.
모두 ‘행’이라는 글자가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지용보살’이란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관념’이 아닙니다. 자신의 오체로 끝까지
‘행동’하는 모습이 바로 ‘지용보살’의 증거입니다.
‘행동’이 없으면 ‘건설’할 수 없습니다. ‘영광’도
‘행복’도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과
사회 만반에 통하는 도리입니다.
‘행동’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푸념으로
이어집니다. 푸념은 신심을 파괴하고 행
복으로 향하는 궤도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맙니다.
생명은 움직임입니다. 우주도 움직입니다.
지구도 움직입니다. 동물도 식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움직입니다.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인생’은 ‘
좋은 행동’을 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멋진 인생’은 ‘올바른 행동’을 착실하게
반복하는 데서 꽃을 피웁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앞으로
‘끝까지 행동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자! 또 뭔가 배우자!’ 하는 구도심을 불태워
회합에 간다, ‘자, 함께 행복해지자! 하고
가족과 지역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넓힌다, 여러분의 그
러한 나날의 ‘행동’에 ‘불법’의 진수가
맥동합니다. ‘정법의 공덕’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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