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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선집

28-23 대화가 바로 평화의 왕도

by 행복철학자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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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3 대화가 바로 평화의 왕도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은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끊이지 않는 테러로 불만이나 군비확장 경쟁의 위협이 심해지는 가운데

이케다 선생님은 일관하여 ‘대화'라는 두 글자를 내려놓으면

안 된다고 계속 외치셔습니다

이케다 선생님 지침

제30회 1.26 'SGl의 날' 기념제언 에서(2005년 1월 26일)

2001년 9월, 미국에서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일어난 뒤

세계에는 지구 전체에 걸친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테러에 대항하는 형태로 많은

나라에서 안전보장정책을

우선하는 가운데, 이러한 긴장상태에서 비롯되는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시민 생활 속에 계속 확산되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사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지금의 위협에는 그 이상의

무한성이 느껴집니다. 이는 상대방의 모습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종결될지 전혀 그 길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군사행동이나 치안조치를

아무리 강구해도 안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답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근년에 많은 나라에서 '안전보장'을 우선시한

나머지 군축(軍縮)은커녕

군비확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강해져

치안우선을 위해 인권을 제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빈곤과

환경파괴라는, 다른 지구 규모의

문제군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이 자꾸 늦어져

사람들의 생활과 존엄을 위태롭게 하는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음은 테러 시대가 초래한 또

하나의 커다란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본디 '마법의 지팡이'를 한번 휘두른다고 끝나는

그런 타개책은 없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험난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문답무용(問答無用)의 폭력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가 하는 아포리아(난문<難問>)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공연히 비관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 일으킨 문제인 이상 인간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할 리 없고,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얽힌 실타래를 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타개할 길은 반드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최대의 열쇠가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는

'대화'라는 두 글자입니다.

'대화야말로 평화의 왕도'라 함은 인류사가 멈추지

않는 한 영원히 짊어져야만 하는

숙제가 아닐까요.

아무리 그럴싸한 반론이나 냉소를 당하더라도

이 절규를 끝까지

부르짖는 기력을 잃으면 안 됩니다.

돌이켜보면 국제창가학회(SGI)를 발족한 1975년은

제4차 중동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잔불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서방측 여러 나라가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해 결속을 굳히는 한편 동쪽

진영 내에서 중소대립이 격해지는 등

세계의 분열이 심각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SGI 발족에 앞서 1974년에

중국과 소련을 잇따라 처음 방문해

일촉즉발의 긴장상태에 있던 양국 정상과

성심성의껏 거듭 대화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소련 사람들에 대한 적대의식이

심해 '왜 종교인이 종교를

부정하는 나라에 가는가' 하는 비판도 수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던 샤회주의국가의 존재를

무시한 채로는 세계평화를

전망할 수 없기에 그 상태를 하루 속히 타개해아 한다는 것이

불법자로서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소련 공습에 대비해

지하에 방공호를 만드는

베이징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본 저는 3개월 뒤

(1974년 9월)에 만난

코시긴 총리에게 "중국은 소련의 태도를

염려하고 였습니다. 소련은

중국을 공격할 의향이 있습니까."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저는 "소련은 중국을 공격할 의향도 고립시킬

의향도 없습니다." 하는

총리의 답변을 가지고 다시 중국으로 가 그

메시지를 전하고 동시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만나 중일 양국이

우호를 깊이 다져 함께

세계를 위해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 1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창가학회 청년부가

펼친 핵폐기 1천만 서명을

유엔본부에 전달하고 키신저 국무장관과도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러한 '대화'의 소용돌이를 한창 넓히는 가운데

1975년 1월 26일,

제2차세계대전의 격전지인 괌에 51개국.지역의

대표가 모여 '민중에 의한

일대(一大) 평화세력' 구축을 목표로 SGl가

출발했습니다.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대화야말로 평화의

왕도'라는 신념대로 전진했습니다.

저도 분단으로 치닫는 세계를 위해 우정과

신뢰로 맺는 '인간외교'와 문화,

교육 분야의 폭넓은 '민중교류' 추진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국가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세계 지도자와

거듭 대화하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유교를 비롯한 사상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이 다른 석학들과

대화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21세기 인류에

요청되는 대화를 성립하는

기반은 역시 '결합은 선(善), 분단은 악(惡)'을

신념으로 삼는 '인간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이외에 길은 없다는 것이

제 변함없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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