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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불법세미나

용녀의 성불을 생각해 본다

by 행복철학자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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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의 성불을 생각해 본다  

 
(실천교학) '용녀의 성불'을 생각해 본다 

누구나 妙法의 당체로서 평등남의 성불은 나의 성불이라고 선언 청소년관

여성의 범죄 증가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이 일으키고 있는 흉악한 사건이 

사회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해마다 범죄가 저연령화(低年齡化)되는 사태를 놓고 많은 논의가 일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청소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흉악한 사건들을 빈번하게 일으키고 있다.

 

특히, 아동학대(虐待)로 어린이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든지, 보험금을 타려고

남편이나 자식을 살해한다든지 본래 생명 자애(慈愛)의 상징있었던 '어머니'가

일으키는 '사건'의 급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야말로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지금의 일본국의 
소아(小兒)는 혼(魂)을 잃고, 여인(女人)은 피를 토한다 함은 이것이다" (어서 1564쪽)라고 하는 성훈대로의 상황이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미래의 사회'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힘을 잃어버린다든지 또 생명탄생에 직접 관여하는 여성이 괴로움에 허덕이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인류사회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누구보다 먼저 즉신성불 이것은 사회의 잘못된 부분이 인간의 가장 민감한

부분에서 출발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을 구하자! ' 이 과제에 정면(正面)으로 맞서, 근본적인 해결의 방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법화경(法華經)》에

설해져 있는 '용녀(龍女)의 성불(成佛)'이다. 용녀란,〈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에 등장

하는 8세(八歲)의 용(龍)이라는 축생(畜生)의 몸이다.

 

이 처럼 용녀는 모든 의미에서 성불(成佛)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존재였다. 그런데 용녀가

누구보다도 먼저 '즉신성불(卽身成佛)'을 한 것이다. 당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여인성불(女人成佛)'을 가능하게 한 《법화경》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누구보다도 먼저 이곳에 온갖 인간을 구제하지 않고 있을 손가!라는 마음으로 설해진 《법화경》의 따스한 메시지가 있다. 당초 사리불(舍利弗)을 비롯하여 법화경의 

회좌(會座)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용녀의 성불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용녀는 "그대들의 신력(神力)으로서 나의 성불을 보라"(법화경 433쪽)라고 외치고 많은 중생 앞에서 성불의 모습을 나타내고 중생을 인도하는 '현증(現證)'을 보였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은 "사리불이, 이것을 '용녀의 성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신의 성불'인 것이라고 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용녀가 사리불을) 책(責)한 것이다" (어서 747쪽 통해)라고 말씀하셨다. 용녀 생명이 일체중생 속에 또한

이케다(池田) SGI회장은 《법화경의 지혜》에서 대성인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성덕(性德)의 용녀(龍女)이니라" (어서 798쪽)라고 하셨다. 일체중생이 

용녀의 생명(生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 남성도 용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용녀는 
"나의 성불은

사리불(舍利弗)의 성불이기도 한 것"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용녀는

불법(佛法)에서 설하는 십계(十界) 가운데, '아귀계(餓鬼界)'의 중생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아귀계(餓鬼界)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법화경》에서 설한 십계호구(十界互具)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리(法理)로

보아서 아귀계의 생명을 상징하는 용녀가 성불할 수 없다면 자신의 성불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께서는남의 불성불(不成佛)은 "나의 불성불 남의 성불은

나의 성불"(어서 401쪽)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그 누구라도 십계호구의

당체(當體)로서 평등하다. 아귀계 중생도, 축생계(畜生界)의 중생도 모두 동등

하게 묘법(妙法)의 당체인 것이다. 이 곳에 자타(自他)를 나누어 놓는 차별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타인이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면 자신도 성불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 역(逆)으로 타인이 성불할 수 있다고 하면 자신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쾌한 인간평등의 선언이며 만인성불(萬人成佛)의 선언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근본의 시점(視點)이 나타나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 어머니들이

일으키고 있는 여러 문제를 타인의 일로 여기고 혹은 단지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해결의 길은 닫혀져버리고 만다.

 

모두가 '자신의 문제'라고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이《법화경》에서 설(說)하는

'용녀의 성불'이 보여주는 메시지다.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과 마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어둠'을 몰아내는 노력을 시작하지 않는

한 사회를 뒤덮고 있는 '어둠'도 결코 걷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과 남을 분리하고 어느 면에서 말하면 비통한 사건들도 결국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마음'이 야기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과 남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려고 하는

'에고(이기)의 마음'이 용녀의 성불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사리불의 마음이다. 

이에 대해 타인의 성불이 자신의 성불이라고 하는 외침속에는 남과 자신을 분리하고

격리시키는 일은 없다.

 

그렇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일이라든가 비난에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사람들을

구해간다. 이것이 용녀의 마음이다. 이 양쪽의 마음을 한 사람의 인간 생명에

내재(內在)해 있는 것이라고 설한 것이 《법화경》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앞에 두고 용녀는 석존에게 맹세한다.


"나 대승(大乘)의 가르침을 열어서 괴로움의 중생을 
도탈(度脫)시키리라."

(법화경 431쪽)
"누가 뭐라 하건, 나는 나를 구해준 묘법(妙法)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해 가는 것이다."


놀랍고 멋진 말이다.《법화경》에는 "일체의 차이를 극복하고 
나아가라!"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내적(內的)인 용녀'에게 눈을

돌릴 때 현실사회에서 생기는 갖가지 문제도 많은 비애(悲哀)도 극복해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고 하는

《법화경》의 법리(法理)를 갖고 관념이나 이론으로 거쳐서는 안 된다.

 

많은 모순이나 불합리 부조리 등에 가득 찬 현실'을 확실하게 파악한 

그 위에서 실제 자타 모두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일으켜간다. 여기에

《법화경》의 진의(眞意)가 있는 것이다. 이케다 SGI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 비참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10대(代)의 청소년들의 '마음의 
어둠'의 깊이를

세상에 소란스럽게 들추어내어도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는 일은 없다.

어른들 입장에서 어둠을 낳은 사회의 전도(轉倒)에 눈을 돌리며 또 책임을

느끼고 소리를 외치며 행동을 일으켜 갈 필요가 있다"

('교육을 위한 사회'를 지향해서  21세기와 교육) 라고. 자신의 위치를 초월하고

성별과 연령을 초월해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행복을 향한 대도(大道)를 걷는 '용기있는 실천'이야말로 

건전한 사회를 키워내며 넓혀 가는 행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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