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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학

본인묘(本因妙)

by 행복철학자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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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묘(本因妙)


성불의 심오한 인(因)을 명시
현재의 과(果)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연다

 

우리들이 삼대비법(三大秘法)의 본존님을 수지하여 신심에 면려하는

것을 불도수행이라 말합니다.

불도수행이란 성불을 지향하는 수행이란 뜻입니다.

 

 이 불도수행에는 당연히 발심(發心)과 결의(決意)가 있으며,

공덕과 실증이 따릅니다.
이 양자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발심과 결의가 없으면

신심의 실천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심과 결의라는 인(因)이 있어 비로소 신심의

실천이 생기고 공덕과 실증이라는

과(果)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과로서의 실증을 봄으로써 인으로서의

신심의 결의의 정도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불의 근본 인이 되는 것이 본인(本因)이며,

그에 대한 성불이라는 과가 본과(本果)입니다.

 

중국의 천태 대사는 특히 법화경에 설한 석존의 성불의

과 등에 대해 상세히 해설했습니다. 본인묘라는 말은 거기

나온 말입니다. 즉 본인(本因)이란 성불의 근본원인을 말하며,

이 본인은 생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경애이므로
묘(妙)라 말합니다. 그런데 성불의 본인이란 결론적으로 말하면

南無妙法蓮華經가 됩니다.

 

이 사실을 밝히신 말법의 본불 니치렌 대성인은 묘법

본존님으로 명시하셨습니다.

따라서 대성인의 불법을 본인묘의 불법이라 말합니다.

이와는 달리 석존은 법화경에서 성불했다는 결과를 중심으로 

설법했습니다. 빛나는 존귀한 성불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의 부처에 대한 갈앙심(渴仰心)을 불러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존의 불법을 본과묘(本果妙)의 불법이라 말합니다.
이 본인묘와 본과묘의 관계는 종자와 과실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생장하여 양분을 모아 훌륭하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과실에 상당하는 것이 본과묘입니다.
그에 비해 줄기나 가지를 키워 잎을 무성하게 하고 뿌리를 뻗어

곧 풍부한 과실을 결실시켜 가는 힘을

품고 있는 종자는 본인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부터 실증과 승리의 과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습니다. 그러나 이 본과에는 큰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굉장한 부처의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본과묘는

자칫하면 거기에서 과거로 향하거나 현실의 과에 머물고 마는

생활방식을 낳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 경향성을 싫어하여 본과묘적인 생활방식을 배제하라고

SGI와 SGI한국불교회는 주장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칫하면 현상에 안주하여 결과로 나타난 현재의

습에 집착하기 쉬운 법입니다.
예를 들면 무엇인가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 결과에 기뻐하며

도취되어 미래를 향해 더욱더 크게

전진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무슨 일에 실패하여 불행하게 된다면 그 결과에 구애되어

한탄하고 슬퍼하며 인생을 체념해 버리는 모습도 있습니다.
이 상반되는 두 가지 인생의 모습은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통점도 있습니다. 양쪽 모두 현재의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거기

속박되어 과거로만 눈을 돌리는 생활태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본인묘의 생활방식이란 끊임없이 현재를 출발점으로

하여 미래를 향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간다는 자세입니다.

슬픔이나 불행마저도 성장의 밑거름으로 하는 강력한

생활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칫하면 타성에 흘러 보수적이고 안일한 방향으로 빠지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상에 만족해 안주(安住)의 땅에 주저앉으려는 현재의

자기에게 도전해서 타파하여 임없이 미래를 발굴하려는 적극적,

능동적인 자세 속에서만 생명은 약동하며 빛나는 것입니다.
본과에 안주하고 있으면 생명은 고여 있는 물과 같다고 하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는 현상에 타협하여 후퇴하는 자세가 아니라,

드디어 지금부터다 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불타 전진하는 자세는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중요한 생활방식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성인어난사>라는 어서에 「월월(月月) 일일(日日)

강성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어서 1190쪽)고 가르치시며 훈계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이달보다 다음 달, 이렇게 더욱더 성장을 위해 노력하여

도전하는 실천의 지속이 있어야만 인생의 승리는 있는 것입니다.

 

이 일절은 묘법 신앙자가 관철해야 할 본인묘의
신심을 단적으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전진하지 않는 것은 퇴전 현재보다 미래를 향해 용기와 희

그리고 확신으로 가득 차 착실한 전진을수행해 가는 원천이야말로

나날의 풍부한 근행과 창제에 있다는 것을 부언해 두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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