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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생명의 본질을 파헤치다.
(생명의 본체와 작용)
‘제법실상’이란, ‘온갖 현상의 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상'의 내용을 밝힌 것이
다음에 이어지는 십여시이다.
먼저 십여시 각각의 의미를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여시상 = 외견상의 모습
여시성 = 내적인 성질
여시체 = 여시상 • 여시성을 합친 전체
여시력 = 잠재적인 힘
여시작 = 힘이 외부로 작용하는 작용
여시인 = 사물(事物)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
여시연 = 인(因)을 돕는 간접적인 원인과 조건
여시과 = 인(因)과 연(緣)으로 생기는 결과
여시보 = 결과가 사실이 되어 외부로 나타나는 것
여시본말구경등 첫째의 상(相)에서 아홉째의
보(報)까지 서로 관계하여 일관하고 있는 것
이 가운데 상 • 성 • 체의 삼여시는 제법의 ‘본체’이다.
역 • 작 •인 • 연 • 과 • 보의 육여시(六如是)는 제법의
‘작용’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상'에서 '보'까지 구여시(九如是)의 일관성을
본말구경등이 나타낸다.
물론 각각에 ‘여시(如是: 이와 같은)'라는 말이 붙어
있듯이, 본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처의
지견(知見)을, ‘굳이 말로 나타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를 들어 말하면, 당신 자신이라는 존재는
‘제법(諸法)’의 하나이다.
당신의 얼굴과 몸매 등은 제법인 당신의 ‘여시상’이다.
또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
예를 들면 ‘성미가 급하다'든지 '성미가 느긋하다.’든지
‘상냥하다.'든지 '얌전하다.’든지의 여러 성격과 성분은
당신의 ‘여시성’이다. 이 여시상과 여시성으로 이루어진
심신(心身)의 전체, 말하자면 당신 자신이 ‘여시체’이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갖가지 힘(여시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밖으로 향해서 갖가지 작용(여시작)을 일으킨다.
또 그러한 당신 자신의 생명이 원인(여시인)이 되고,
내외(內外)의 조연(助緣: 여시연)이 더해져, 당신 자신의
생명에 변화가 일어나고(여시과), 그것이 이윽고 현실의
과보(여시보)로 나타난다.
게다가 이 아홉개가 일관해서 빠짐없이 당신이라고 하는
생명, 당신이라는 경우(境遇: 경애)를 만들고 있다
(여시본말구경등).
이것이 당신의 '십여실상(十如實相)'이다.
'나'라고 하는 인간도, 또 여러분 자신도 이 십여시라는
본연의 상태로 있다. 여러분 중에 '내게는
여시상(如是相)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투명인간(透明人間)'이다.
마찬가지로 '성격이 없다'는 사람도 없으며, '아무런
힘도 없다' '작용도 없다'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여시상은 나 자신이지만 여시성은 A씨고 여시체는
B씨고…'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관해서
당신 자신의 둘도 없는 생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십계(十界) 각각이 경애에 상응한
십여(十如)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지옥계(地獄界)의 사람은 어둡고 침울한
고뇌에 빠진 여시상을 하고 있다.
그 여시성은 괴로움과 분노로 가득하기 때문에 여시력과
여시작도 주위를 어둡고 침울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천계(天界)의 사람의 여시상은, 싱글벙글 웃는
밝은 표정이다. 여시성은 그야말로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고, 무엇을 보아도 즐거울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까지도 왠지 신나게 하는
여시력 * 여시작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십계의 경애에 상응한 상 * 성 * 체 * 역 * 작 *
인 * 연 *과 * 보가 있으며 모든 것이 본말구경해서
똑같다는 것이 실상(實相)이다.
"여기에 가령 도둑이 있다고 하자. 그 도둑은
여시상에서 여시보까지 모든 것이 도둑인 것이다.
그것이 본말구경등, 일관되어 있는 셈이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부처의 지혜
제법의 있는 그대로 '실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지
사물의 표면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생명의
넓이, 깊이를 남김없이 철저하게 들어다본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길가에 피는 한송이
꽃에도 아름다운 상이 있고, 성질이 있고, 그 체가 있다.
또 역 * 작 * 인 * 연 * 과 * 보 *
어느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 그리고 전체로서
꽃이라는 생명을 구성하면서 일관하고 있다.
무생물도 마찬가지다. 작은 돌멩이도, 대공(大空)도,
달도, 별도,태양도, 조수(潮水)의 향기를 옮겨주는
바다도, 우뚝 치솟는 산들도, 떠들썩한 거리를 내려다
보는 도시의 빌딩숲도, 집과 자동차도, 도구 하나하나도
모든 존재가 십여시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부처가 규명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지혜이다.
다시 말해서 '제법'을 보면 부처는 그 '실상'을 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경애를 알고,
본래부터 부처라는 사실을 안다.
자연을 보면 그 존귀한 빛남을 느낄 수 있다.
또 사회현상을 보면 그 의미를 예리하게
꿰뚫어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생명과 사물의 본질을 간파하는 것이
제법실상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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